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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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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개념으로만 알고 있으면 신약 성경을 읽을 때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요한복음에는 영생을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죽지 않고 계속 사는 사후의 생명이라는 의미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1. 요한복음에 나오는영생 공관복음서에 나오는하나님 나라(천국)’ 대등하다.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용한 경우는 극히 드문 반면(요 3:3) 대부분  ‘영생’이라고 하였다(요 3:3).

공관복음서에도 ‘영생’이라는 말이 쓰였지만  주로 ‘하나님 나라’(천국)라고 하고 상호 교체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 “영생에 들어가는 것” (마 18:8, 9)

예)  “영생에 들어가는 것”(막 9:43, 45)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막 9:47)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영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영생’은 문자적으로 ‘영원한 생명’이다.  원래 히브리 식의 표현인데 ‘오는 세대(세상)의 생명’을 가리킨다. 헬라어 번역으로는 ‘영원한 생명’인데 우리말로 ‘영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냥 ‘생명’이라는 말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영원하다는 형용사를 붙였을 뿐이지 동일한  ‘생명’을 가리킨다(요 1:4; 6:33, 48).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영생’과’  ‘생명’을 자주 교체해서 사용한다(예, 요 3:15, 16, 36;  5:24). 또한 구원을 받는 것(요 3:17)도 영생을 얻는 것(요 3:16)과  같은 뜻으로 교체된다.   

  ‘오는 세대의 삶’은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사는 현세대(세상)와 대조되는 메시아 시대의 새 생명의 삶을 가리킨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의 왕권적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이 주시는 새 생명의 능력으로 사는 삶이다(롬 6:4). 구원이 제공하는 가장 귀한 선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Life)이다. 복음은 이것을 ‘영생’이라고 부른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7-48)

 

2. 영생은 정의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처럼 영생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여러 측면과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예수님의 기도에서 영생의 정의가 간략하게 나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영생을 단순히 사후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만 알고 있으면 예수님의 영생에 대한 정의는 전혀 이해될 수 없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이기보다는 영원하신 분을 아는 것이다"(D.A. Carson).  예수님은 영생의 핵심 요소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깊은 관계에서 오는 체험적이고 전인격적인 사귐이다. (참고. 창 4:1  ”동침하매”).

영생은 영원히 사는 상태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통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순종과 사랑의 삶을 가리킨다. 영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하나님의 뜻과  다스림에 순종하는 믿음 생활이다.

 

3. 영생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영생을 정의한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오해하기 쉽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지가 중요하다. 본 절은 영생을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앎의 측면에서 진술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사실을 전제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 예수님의 기원과 구원자로서의 신분을 아는 것

◐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아는 것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역할과 신분 및 생애 전체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가 구원 활동이었음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인 후에 그분과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구주로 믿는 것과 그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먼저 알고 그분과 사귐을 갖는 삶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영생은 단순히 예수를 대속주로 믿는다는 일종의 고백적인 신앙의 차원을 넘어설 때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

상대방을 알려면 그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신분과 성품과 뜻을 알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는 자신의 신분과 인격에 대한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속주로서 하나님과 신성을 공유하며 잃은 양을 찾고 보호하는 선한 목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는 교제를 시작하기 위한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다.

찾아보기:

예수님의 신성: 요 1:1; 8:58; 10:30, 33

대속주: 막 14:22-24; 요 1:29; 3:17; 12:47

선한 목자: 눅 15:1-7; 요 10:11, 14; 사 40:11

    

[ 하나님을 아는 일에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힘써” 알려고 해야 한다. 건성이 아닌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한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오직 주 예수를 아는 지식에 집중해야 한다(빌 3:8-9; 비교 막 7:6; 고후 8: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섬긴다고 했지만 눈가림에 불과하였다. 그들의 제사는 경건하게 보여도 그들의 삶에는 자비가 없었다. 사랑과 진심이 없는 제사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예수님은 당시의 유태인들을 향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라는 호세아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셨다(마 12:7; 마 23:23).

 

♣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요일 4:8)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낭만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가면서 이를 자신의 삶에서 드러낼 때 하나님은 자신을 더 알려 주신다(호 6:3).

   관련 성구: 요일 2:3; 약 4:8; 요 14:21

 

  ♣ 영생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새번역에서는 ‘가지고 있다’라고 번역하였다. 원문에도 현재형 동사로 나온다.

“영생을 가지고 있다(has eternal life)는 것은 영생을 현재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진술한 것이다. 영생은 예수를 믿을 때 즉시 시작된다. 이때 영생은 부분적이긴 하지만 매우 유의미한 방식으로 실현된다. 믿는 자들은 마지막 심판을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다” (ESV Study Bible)

내가 현재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은 나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셨다는 사실은 나의 구원을 확신케 한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열망을 일으킨다.

관찰: 요한복음 3:14-18절과 요한복음 5:24절을 비교해 보고  공통점을 찾아보라.

 

♣ 내 속에 새 생명의 씨앗이 뿌려진 사실을 믿어야 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내가 영생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베드로는 씨의  비유를 든다. 신자는 거듭날 때 썩지 아니할 씨 뿌림을 받는다. 이 새 생명은 잃어버리거나  부패될 수 없다. 그 까닭은 결코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5)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였다(사 40:8).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변치 않는다. 따라서 우리 속에 들어간 씨도 변치 않는다. 썩어질 씨는 첫째 아담의 씨로 태어나는 것이고 썩지 아니할 씨는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씨로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교인은 둘째 아담에게 속하였으며 내주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니고 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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