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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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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멸시하고 버린 인생들을 주님은 수집하신다. 주님은 폐품 이용(recycle)의 매니저다. 주님의 손에서 재생되고 회생되지 못할 폐품 인생은 없다. 당신은 버림을 당한 적이 있는가? 배신을 당하였는가? 쓸모 없는 자로 낙인이 찍혔는가? 주님은 당신을 찾아 나선다. 날마다 주님은 폐품 수집을 위해 나가신다. 하늘 아버지가 세상의 찌꺼기들을 모으라고 아들에게 명령하셨다. 아들은 주님의 뜻을 기쁨으로 행하신다.아무리 더럽고 무시받는 폐품이라도 주님의 손에 잡히면 몰라보게 새로워진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대상임을 알게 된다.

 

  십자가는 모든 폐품 인생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버려진 인생들을 재창조하신다. 사람들은 날마다 쓰레기를 버린다.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 사람들의 눈에 귀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기는 원하지만, 버린 쓰레기를 줍기는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버리는 인생 쓰레기들을 하나님은 줍기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에게는 창피도 수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날마다 인생 폐품들을 수집하러 나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에 의해 내버려진 폐품 인생들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주님의 손에 의해 시력이 회복된 자를 유대인 지도자들은 쫓아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다시 만나 주셨다(요 9:35). 버린 인생을 주님이 찾으셨다. 사마리아 여인도 버려진 폐품 인생이었다. 지금도 주님은 여기저기 버려진 인생들을 수집하러 다니신다.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멸시와 학대를 받는 버려진 삶을 정결한 십자가의 피로써 씻어 새롭게 하시려고 그들을 만나러 다니신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버려진 폐품 인생이다. 주님을 배반하고 통곡하던 베드로는 폐품이었다. 선교 여행에서 탈락했던 마가도 폐품이었다. 밧세바와 동침했던 다윗도 폐품이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라함도 폐품이었다. 동생을 죽였던 가인도 폐품이었다. 뱀의 말을 들었던 하와도 폐품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던 아담도 폐품이었다. 그렇다면 폐품이 아닌 자들이 어디 있는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우리들의 인격과 성품에는 죄악으로 물든 오염된 자국들이 즐비하다. 내 인생의 여러 곳에서 폐품들이 쌓여 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폐품들이 나를 썩히고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찾아 나선다. 나 자신은 폐품 인생이 아니라고 부인하여도 나를 지으신 주께서 나의 폐부를 꿰뚫어보신다.

 

  나는 얼마 전에 런던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속을 들여다본다면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폐품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남들은 폐품일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길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성전에서 세리를 보며 기도하던 바리새인의 고백이었다(눅 18:9-11). 남이 안다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악한 생각이나 행위나 부패한 구석이 내게 없단 말일까? 나는 곧 폐품 인생이다.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았건 않았건 나는 하나님 앞에서 폐품 인생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폐품 인생들에게 복된 소식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폐품 수집가라는 사실이다. 주님은 잃어 버린 양들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이다. 이 목자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로 가셨다. 선한 목자는 십자가에서 찢겨진 양 손으로 찌그러지고 녹슨 인생들의 심령을 고치신다. 피 묻은 주님의 손은 치유의 손이다. 십자가에 못박혔던 주님의 손은 사랑과 능력의 손이다. 그 손은 폐품 인생들을 긍휼히 여겨서 십자가로 가셨던 사랑의 손이며,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보존하는 능력의 손이다. 주님의 깊은 사랑과 무한한 능력으로 다시 새롭게 단장될 수 없는 폐품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작품 전시실에는 어떤 품목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걸작품만 전시되어 있다. 완전한 예술품만 수집되어 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였다(엡2:10). 어느 날 새 땅과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작품들이 온 만물 앞에서 전시된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천사들과 우리들은 놀라고 또 놀랄 것이다. 세상의 폐물들이 위대한 걸작품으로 변화된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 걸작품 중에는 나도 끼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적혀 있을 것이다.

 

  그 날 드러날 나의 영광된 모습은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는 가려져 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주님의 형상이 지닌 영광을 온 우주 앞에서 드러낼 것이다. 인류의 타락 이래로 상실했던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이 그 때 우리들에게 온전히 회복될 것이다.

 

  나는 지금 폐품 인생을 살는지 모른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이미 영광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다. 하늘 조각가의 온전한 손에 의해서 날마다 새롭게 닦여지고 깎여지며 다듬어진다. 내 몸에서 온갖 찌그러진 부분들이 펴지고 있다. 남들이 미워서 내던진 부분들이 주님의 걸작품이 되는 자료가 된다. 녹슨 내 인생의 폐품들이 하늘 조각가의 자비의 눈길을 받고 있다. 나는 비록 폐품일지라도 주님은 폐품을 수집하신다.

 

  주님이 왜 폐품을 수집하실까? 폐품이 무엇이 좋아서 찾아 다니실까?

 

  주님의 시선은 폐품만 보시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전시될 완전한 걸작품의 영광을 보신다. 사람들은 나의 일그러진 부분에서 시선을 뗄 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보는 시선도 이와 같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온 우주 앞에서 자랑할 존재로 재창조 할 수 있는 하나님 자신의 능력의 손을 보신다. 당신은 그 손을 믿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폐품 인생을 한탄하지 말라. 자신의 흉한 모습에 절망하지 말라. 사람들의 무정한 말들에 가슴을 앓지 말라. 주님의 놀라운 자비와 능력의 손을 보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주님의 피 묻은 손을 보라.

 

  주님은 나의 폐품들을 수집하신다. 주님은 버려진 나를 보고 나를 안아 올리신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은 폐품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주님이 정말 보시는 것은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고 주님의 능력의 손이며 주님의 손에서 지어질 그 날의 걸작품이다. 그렇다면 나도 주님의 시선을 따라 그 날의 나를 보아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3)고 말하였다. 세상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더럽고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들이다. 나 자신이 더럽고 또한 세상이 나를 그렇게 취급한다. 그러나 현재의 아픔과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 8:18).

 

  그렇다면 우리들의 미래는 얼마나 밝고 복된 것인가! 새 날이 밝아 온다. 폐품들을 수집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우리들의 영광된 새 날이 밝아 온다!

 

[ ‘화가 복이 될 때까지’ 제 1편에서 따옴] by 이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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