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경공부 교안(1)
소개
A. 공관 복음서들과 많이 다른 특징이 있다.
☞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가장 많다. 특히 예수님의 사역 목적과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증언이 풍부하다.
☞ 신학적인 깊이가 있다.
☞ 자체적인 자료가 많다. 약 90%가 공관복음서에 없다. 8%만 다른 복음서와 중복된다.
예) 가나의 결혼 잔치, 니고데모와의 대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하나님의 어린 양, 다락방 메시지 등은 요한복음에만 실려 있다.
☞ 공관복음서에는 유월절이 한 번만 언급됐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적어도 세 번의 유월절 이 나온다.
☞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주로 다루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대 지방의 사역이 두드러진다.
B. 요한복음이 사용하는 문학적 장치
1) 문장 스타일이 간명하고 독특하며 매우 인상적이다. 예) 1:1; 14:6
2) 두 개의 사건들이 한 주제 속으로 모이고 참뜻이 드러난다.
☞ 나사로의 부활과 예수님의 부활
☞ 광야의 만나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3) 대조법을 사용한다
☞ 빛과 어둠(1:4-5),
☞ 사람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12:43)
4) 일곱이라는 숫자를 통해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곱 개의 I AM statements. ‘나는…이다.’
‘내가 그니라’(I am He’ 요 8:24, 28, 58),
[7곱 I AM statements]
생명의 떡(6:35; 6:48)⇒ 세상의 빛(8:12; 9:5), 문(10:7-9)⇒ 선한 목자(10:11, 14), 부활(11:25)⇒ 길/ 진리/ 생명(14:6)⇒ 포도나무(15:1-5)
[일곱 표적]
첫 번째 표적: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2:11).
두 번째 표적: 가버나움의 귀인의 아들 치유(4:46-54).
세 번째 표적: 연못 가의 중풍병자 치유(5:1-9).
네 번째 표적: 오병이어(6:1-14, 26).
다섯 번째 표적: 나면서 맹인 된 자의 치유(9:1-12).
여섯 번째 표적: 죽은 나사로를 살림(11:1-44).
일곱 번째 표적: 십자가 자체(2:18-22.
4)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기적을 ‘표적’(헬. 세메이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2:11). 이것은 단순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적의 차원을 넘어 영적이고 계시적인 의미를 가리킨다.
표적이라는 말은 요한만의 전문 술어가 아니다.
♣ 사도행전과 공관복음에서도 같은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되었다(행 4:16, 22, 43; 5:12; 8:6, 13; 마 16:4; 눅 11:29; 막 12:38).
♣ 바울도 자주 사용하였다(살후 2:9; 고전 1:22; 고후 12:12).
유대인들은 항상 표적을 구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이 표적이라는 말에 신학적 의미를 입혀서 사용하였고, 다른 저자들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저자가 사도행전도 썼지만, 누가복음에서도 일반 용법으로 사용했다고 본다. 요한처럼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기적들을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에 비추어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표적은 기적 자체의 표면적 현상을 넘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표지판이다(6:26).
▶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시는 메시아 사역의 성격과 본질에 대한 의미를 가리키는 게시판이다.
▶ 대부분 표적 뒤에는 그와 관련된 메시지가 따른다.
☞ 9:7, 39-41
C. 서언(1:1-18)은 후속 본문에 대한 압축판이다.
인형극: 줄 끝에 인형이 달려 있다. 각 줄에 따라 인형의 각 부분인 팔, 다리, 머리, 등이 움직인다. 줄을 따라가면 연결된 부분이 나온다. 이처럼 서언은 인형극의 control 대에 붙은 줄과 같다.
1:1-18은 나머지 내용의 전주곡이다. 앞으로 전개될 주제들이 여기서 모두 미리 제시되었고 나중에 충분히 전개될 것이다.
☞ 그리스도의 선재⇒ 빛과 어둠⇒ 영접과 배척⇒ 보내심을 받은 자⇒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의 영광⇒ 율법과 은혜⇒ 영생과 심판.
1:1-18절의 서언은 1:19절부터 마지막 장까지의 내용에 대한 암시적인 제목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언은 앞으로 진술할 내용의 압축판이다.
D. 본 서신의 목적
요 20:31
◑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참고. 요일 5:13).
E. 중심 주제
◐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생명과 빛을 우리에게 지적하는 것이다.
◐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으로서 육신으로 오신 대속주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새 창조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오셨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본문 공부]
1:1-5
1.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특별한 타이틀로서 ‘말씀’을 사용한다(1:1).
‘말씀’은 무엇인가? ‘말씀’은 하나님의 대리자며 대변자다. 말씀은 인격체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수단으로서 아들이신 ‘말씀’을 사용하신다.
2. 말씀은 영원하다(1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은 시작이 없다. 그는 아버지가 영원하신 것처럼 영원하신 분이다. 그는 태초에 이미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질적이며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항상 함께 계신다(요 8:29; 10:30; 16:32; 17:5).
3. 말씀은 아버지와 다르면서도 신성은 동일하다(1-2절).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절).
말씀은 성부 하나님이 아니지만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성부와 본질적으로 조금도 차이가 없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4. 말씀은 창조의 대리자다(3절).
▶ 성부의 창조 사역에 성자가 대행자로서 참여하였다. 성부와 성자는 신의 성품을 공유한다(1:1-2). 태초에 성부는 창조를 계획하시고 하늘들과 땅을 지으셨다. 그런데 이 창조에 성자가 대행자로서 활동하였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기 위해 말씀으로 명하셨을 때 그것은 곧 성자의 활동과 임재를 나타내는 ‘말씀’이었다.
▶ 만물이 신적인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 ‘말씀’은 전능자의 능력을 소유한다. 이 능력의 말씀으로 온 우주가 생겼고 이 말씀의 능력으로 모든 피조계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적용]
우리들의 삶과 구원은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말씀’이 전능자의 신성을 가지신 분이며 창조와 구원의 대행자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5. 말씀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창조계에 있는 모든 생명을 가리킨다. 모든 생명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 신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령에 의해 새로 태어난다. 말씀이 없으면 창조도 없고 새 창조도 없다. 모든 것이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나왔다. 물질계의 창조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영적 새 창조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구주로서의 예수님은 잘 알지만, 창조주로서의 예수님은 잘 의식하지 않는 듯하다. 또한 창조주로 배운다고 하여도 예수님이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창조를 하시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질문]
나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새 창조 사역은 어떤 것들일까?
6. 예수님은 빛의 원천이다(4-5절).
이제 요한은 생명에서 빛으로 화두를 돌리면서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대해 언급한다(1:5).
[빛과 어둠의 대조]
▶ 빛은 비치는 것이다. 빛은 드러내는 것이다. 빛이 비치고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보고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빛이 어둠을 비췄어도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의 죄와 관련된 것이다. 어둠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으로 나오지 않는다(요 3:19-20).
▶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참조. 개역개정 각주). 아무것도 빛을 사로잡지 못한다.
▣ 죄에 물든 어둠은 빛을 보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둠은 본능적으로 빛을 싫어하며 반대한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은 승리자다. 이 빛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새 창조를 맡은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질문]
어둠이 빛을 싫어한다면 어떻게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는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