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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하나님의 우편 보좌’는 피조물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하나님과 동일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앉는 영예와 권능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것은 구속 사역을 마치셨다는 뜻이며 동시에 왕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모든 권위를 위임받아 통치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마 2:2)으로 태어나셨지만 그의 왕권은 전 세계적이며 하늘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우주적인 통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왕권은 갑작스럽게 된 일이 아니고 예수님의 탄생 이전부터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을 통해서 여러 세기 동안 미리 알려 주신 일이었습니다.   

 

☞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했을 때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2~23).

 

☞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한 아들을 메시아로 예언하면서 그가 공의와 평강의 왕이며 그의 왕국은 영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 (사 9:6~7).

 

☞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자손과 왕위가 영원할 것을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해서 한 왕을 일으키실 것인데 그는 지혜와 공의로 만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내가 또 그를 나의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 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시 89:27~29).

   예수님은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대표하는 다윗의 상속자입니다(롬 8:17, 29; 골 1:15). 그는 세상의 왕들 가운데 가장 높은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계 1:5; 19:16).

 

☞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맹세하셨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 7:12~13).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수천 년 동안 변치 않고 진행되어 왔는지를 안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큰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다윗 왕가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의 맹세로 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만큼이나 안전하고 확실하여 절대로 취소되거나 상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시는 일은 모두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대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히브리서의 성도들처럼 그릇된 기독론의 유혹을 받습니다. 최근에 부쩍 퍼지는 다원종교의 지지자들은 기독교의 독특성과 최고성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하는 독생자며 창조와 구원의 수행자이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본질을 소유하셨으며 다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와 권능을 행사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과 십자가 대속을 성경의 증언대로 믿고 지금까지 성취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숙지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원주의와 오염된 기독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충족성과 유일성을 굳게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 말씀을 구약에서부터 더 체계적이고 연속적으로 훑어나가면서 신앙의 기초를 더욱 다져나가야 합니다. 건성으로 교회만 다니고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솟아나는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을 때 단순한 첫 구원의 단계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진행 중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적 사역이 시작된 때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세례를 받으신 때부터 사탄의 왕국을 몰아내기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왕국은 강력한 능력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1:20).

 

  그다음 예수님이 3년 반 동안의 사역을 마치시고 십자가로 가셨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났습니다(요 12:31).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14~15).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이후에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고 다시 죽을 수 없는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 올리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히셨습니다(행 2:33, 35). 이것은 예수님의 천상 즉위식으로 우주의 왕이 되시는 때였습니다. 시편 저자가 말했듯이 건축자들이 쓸모가 없다고 무시하고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습니다(시 118:22). 이 말씀은 원래 이방의 강대국들이 이스라엘과 그 왕을 백안시했다는 뜻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셨습니다(마 21:42; 눅 20:17).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 좌정하여 모든 원수를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할 때까지 왕 중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에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마 28:18) 아버지께서 주셨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높여진 신분과 통치 영역을 가장 포괄적으로 진술하였습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 1:20~22).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혀지신 예수님의 높여지심과 세상 만물에 대한 통치는 신약 성경의 여일한 주제로서(빌 2:9; 골 2:10; 3:1; 벧전 3:22; 계 3:21) 특히 히브리서 전체에서 울리고 있습니다(히 2:5~9; 10:12; 12: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즉각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시작되었지만 모든 원수가 다 정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수들을 정복할 때까지 아직도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승리는 거두어지는 중입니다.

   온전한 승리가 선포되려면 어둠에 잠긴 이방 나라들의 무지가 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전 세계 사람들이 구주 예수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통해서 선교사역을 진행 중이십니다.

   반면, 하나님의 교회도 정화되는 중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세속의 영향을 받았으며 현대교회는 물질주의와 피상주의와 인본주의로 물들어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주 예수의 피로써 씻겨져야 합니다. 교회 정화는 선교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님의 유일성과 하늘의 대제사장 되심과 우주적 왕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교회가 갱신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조직체나 종교 단체가 아닙니다. 참교회는 예수님을 유일무이한 대속주로 알고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믿으며 성령의 감화와 인도로 자신들을 예수님의 신부로 준비하는 무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삶 속에서 왕으로 임재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승리를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손을 묶어 두시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다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은 이루어지지만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대부분의 구속 사역은 우리의 협력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려면 그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까지 닿으려는 영적 열망과 밀착되어 있습니다(엡 4:11~13, 15).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 자신이 잘 되는 일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미래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주님을 계속 신뢰해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는 신앙생활을 익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항상 자기 문제의 테두리에서 맴도는 기복신앙이나 성공신앙에 붙잡혀 있거나 하나님과의 실제적이고 영적인 교제와 상관이 없는 교회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태여 성경을 깨달으려고 힘쓸 필요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니, 교회의 영광이니, 만물의 회복이니, 거룩한 성도의 삶이니 하는 것들이 관심도 없고 별다른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몰라도 내 문제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리고 내 복만 챙겨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왜 구태여 성경을 배우느라고 시간을 쓰고, 주님을 닮아 사느라고 애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믿는 신자라고 하면서 성경의 어느 한 책이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교회 생활에만 익숙하다면 복음의 심대성이나 구원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내 영혼을 사로잡는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복음을 깊이 깨달아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당황하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반복된 경고입니다(요일 2:28; 히 2:3; 6:7~8; 10:30~31; 고전 3:12~15).

 

   바울은 초대교회에 서신을 보낼 때 언제나 당시의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신자 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현대 교회는 초대교회에 비하면 영성이 훨씬 낮은 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의 낮은 영성의 수준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구원의 영광스러운 성취에 대한 확신을 품고 오직 주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성경에 즐비합니다. 주 예수께 속한 성도들과 참교회는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합니다(마 16:18). 성령도 풍성히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능력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후히 부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 예수의 복음으로 살아야 하고, 복음의 사상에 젖어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심히 크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큰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시련과 고난을 견디며 더욱 하나님의 종결적인 승리를 확신하고 주 안에서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완전히 쟁취될 날이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그의 원수들을 박멸할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13절). 이 말씀은 두 가지 사항을 포함합니다. 하나는 원수들에 대한 철저한 승리가 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어떤 구체적인 때가 올 때까지 하나님 우편 보좌에 머무신다는 것입니다

 

   첫째 사항의 내용은 예수님이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죽이고 마귀를 불못에 내던지는 것입니다(고전 15:26; 계 20:14). 그래서 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역사가 결정적인 시점에서 새로운 역사로 바뀔 것을 시사합니다. 사망 자체도 죽으면 하나님에게 더 이상 원수들이 없게 될 것이고 우리도 사망의 사슬에서 완전하게 풀려날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중에 부활할 것이며 피조물도 부패의 허무에서 벗어나 우리와 함께 온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롬 8:19~23). 그때 예수님이 하늘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사명이 완전하게 달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우주에 충만할 것입니다(합 2:14; 사 11:9). 그때가 오면 성삼위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완전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새 창조의 세계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현재 사역하고 계십니다.

 

   둘째 내용은 예수님의 승리가 끝나고 하늘 아버지께 나라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에서는 이 부분이 연결되지 않았지만 바울은 예수님의 사명이 종료되면 일종의 왕국 이양식(移讓式)이 있을 것을 알립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 15:24~28).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이 영원히 보좌에서 다스리신다고 했는데 본문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테니까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실 것이며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3)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이 언급되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계 11: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계 22:1).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3~5).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면 예수님의 보좌는 원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승리한 이후에도 그대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왕권이 중단되거나 반납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히 1:13)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왕권이 어떤 특정한 때까지만, 즉 원수들을 완전히 이기고 그들을 발등상으로 삼는 대승을 거둘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말이 아니란 것일까요? 예수님의 영원한 왕권과 그가 원수들을 발등상이 되게 할 때까지만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라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분명 모순입니다. 더구나 바울의 말대로 예수님이 자기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고전 15:24). 나라를 바쳤다는 것은 왕권의 이양(移讓)입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왕권 이양 이후에는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28).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보다 성삼위 안에서의 지위와 신분이 낮은 것일까요? 예수님이 왕권을 반납하고 성부 하나님 아래로 들어가는 듯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이 질문부터 먼저 다룬다면,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신적 본질이 같으시기 때문에 조금도 열등하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모든 권세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아버지께 넘겨드리는 것은 예수님이 받으신 구원 사역의 소명이며 책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고 나라를 아버지께 드리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택함 받은 자들을 구속하라고 맡기신 사명을 완수했음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는 것도 신분이나 속성의 우열 관계 때문이 아니고 구원의 완성을 위해 자신이 가진 역할이 아버지를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주종 관계로 나타나는 경우는(요 7:16, 29, 33; 17:6~9; 고전 3:23;  15:27~28) 존재론적인 구별이 아니고, 기능적인 종속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을 구원하고 다시 그들을 아버지께로 돌려드리기 위해서 아버지의 보내심에 순종하였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요 17:6). 이것은 전적으로 구원 사역을 진행시키고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 종속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23절과 11:3절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종속 관계는 기능적인 것으로서 아들의 구속 ‘사역’에 대한 것이지 그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Gordon Fee, NICNT,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P. 760).

 

  이제 첫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왕권이 영구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아버지께 나라를 돌려드린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자신의 구원 사역으로 이룩한 하나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는 것은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주권이나 왕권을 영원히 반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구주로서의 사역을 온전히 마치셨다는 뜻이지 만왕의 왕의 지위나 권세를 포기하거나 중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고 지상에서 자신의 흠 없는 삶으로 죄를 이기고, 십자가로 속죄의 길을 여시고, 부활로 사탄의 권세를 깨셨습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아직도 하나님 아래 계시면서 중보자로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의 중보사역이 끝나고 마귀와 사망이 불못에 던져지는 최종적 승리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종료되고 하나님께 그의 나라를 바치는 일종의 상징적인 왕권 이양식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왕권의 철수가 아니고 구속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셨음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주로서 어린 양의 보좌를 지키시고 영원토록 경배를 받으실 것입니다(계 22:3). 그래서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계 22:1)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생명수 강이 중단없이 흐르는 것은 어린 양의 보좌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좌에 동석하신다고 하였기 때문에(계 3:21) 아버지의 보좌가 영원무궁하듯이, 예수님의 보좌도 영원한 보좌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 19:28).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서 영원한 왕권을 누리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물론 모든 원수가 사라지고 죄와 죽음이 없는 신천신지에서 온누리에 가득 찬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하며 구속받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며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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