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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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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잉글런드의 한 도시에서 런던 행 버스를 기다릴 때였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여 근처의 쇼핑센터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벤치에 앉았습니다. 맞은편 가게에서 어떤 손님이 화병 하나를 사서 들고나오다가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손님은 물건이 많이 손상된 것을 확인하고는 마침, 내 자리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화병을 던지고 가버렸습니다. 나는 호기심에 버려진 화병을 꺼내 보았습니다. 반짝거리는 색깔을 입힌 예쁜 꽃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목 부분이 여러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나는 고쳐 볼 생각으로 가게에 들어가 접착제를 산 후 집에 와서 정성껏 깨어진 부분들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맨 윗부분의 일부는 조각이 없어져서 그냥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누가 보아도 깨어졌던 화병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6개월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아내가 미국에서 런던으로 왔습니다. 나는 아내를 반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궁리하다 꽃 선물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런데 화병이 없었습니다. 내가 수리한 깨어진 화병을 어디엔가 안 보이는 곳에 간수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화병의 기억이 떠올라 꽃들을 꽂아놓고 아내를 기쁘게 환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환영한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구약 시대의 경배자들처럼 천천의 수양이나 강물 같은 기름으로 해야 할까요? (미 6:7-8).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제물을 원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사 1:11). 그럼 많은 헌금을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물질을 소유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들로부터 재물을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시 50:12-13). 물론 우리들이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중에는 물질도 포함되고 시간과 은사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들로부터 받기를 원하시는 것은 진실한 사랑과 낮은 마음입니다(시 51:17; 미 6:8).

 

 위선이나 꾸밈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다 아십니다(요일 3:20; 렘 17:10; 20:12). 그래서 겸비해진 마음으로 주님을 대해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기를 원하는 것은 매끈하고 값비싼 흠 없는 내 인생의 꽃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실체를 환히 보고 계신 분입니다(히 4:13).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 깨어진 화병임을 아십니다(시 31:12). 우리 가운데 흠 없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들은 모두 땅에 떨어지는 실수와 아픔을 경험해 본 자들입니다. 사람마다 흠집이 있고 상흔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자신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는 주님께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슬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난 자아를 내던지며  포기하지 마십시오. 비록 버릴 수밖에 없는 나의 깨어진 화병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주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진실의 전부임을 기억하십시오.

 

 깨어진 나의 화병에 한 송이 꽃이라도 꽂아놓고 주님을 환영하도록 하십시오. 나의 깨어진 화병은 절대로 완전히 수리될 수 없습니다. 내게는 흠 없는 새로운 꽃병을 살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내 인생의 화병은 깨어진 화병임을 인정하십시오. 그 속에 겸비와 사랑의 꽃을 꽂아 두고 주님을 맞이하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흠집 많은 깨어진 화병에 흉한 시선을 주시지 않습니다. 깨어진 자국에서 내 마음의 진실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화병을 원상대로 복구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깨어진 자아의 화병 속에 내 환난의 고통과 아픔들을 담고 주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한번 깨어진 그릇의 가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때운 자국은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습니다. 내 손으로 수선한 부분은 언제나 나의 약점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나의 모습을 온전히 개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부끄러운 화병 속에 내 마음을 담아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깨어진 자아의 화병을 들고나오는 내 마음의 진실을 읽으시고 나의 흠 많은 인생을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그 순간부터 나의 화병의 상처들이 말끔히 지워지기 시작합니다. 나의 화병은 처음 것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화병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깨어진 화병 속에 치유와 새로운 관계의 회복을 소원하는 한 송이 참 마음의 꽃을 담아 주께로 가져가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회복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새롭게 따뜻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원래 귀한 꽃병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신령한 꽃들을 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찬란한 화병이었습니다. 슬프게도 당신의 꽃병은 하나님께 대한 죄악으로 깨어져 버렸습니다. 깨어진 꽃병은 무가치합니다. 당신은 자아가 땅바닥에 깨어지는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낙원에서 쫓겨난 죄인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은 깨어진 화병들끼리 서로 부딪치며 남의 인생을 짓밟고 메어치는 곳입니다. 깨어진 화병들 사이에서는 날마다 반목과  질시로 상처를 더 깊이 찌르고 이기심과 무자비로 아픈 가슴을 더욱 할큅니다.

 

 산산이 깨어진 인생들의 불행한 삶을 누가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하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들의 조각난 삶을 긍휼히 여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깨어진 삶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생의 깨어진 삶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모든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처형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삶이 무참히 부서지고 조각조각 깨어지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는 아무 죄가 없었지만 모든 죄인의 대표자로서 자신의 생명을 죽음의 형틀 위에 헌정하였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죄의 품삯을 지불하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용서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받고 다시 태어납니다. 죄인들은 더 이상 깨어진 삶을 계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의 대속을 믿는 모든 자의 새 삶을 보장합니다. 우리들의 깨어진 삶은 오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무가치한 내 인생의 깨어진 꽃병을 새것보다 더 낫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깨어진 화병을 놓고 슬퍼하거나 낙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고통을 안고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회개와 신뢰와 겸비의 참 마음을 당신의 깨어진 인생의 화병에 담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주 예수의 십자가가 당신의 파열된 삶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주께로 나아가십시오. 꾸겨지고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자신의 한을 솔직히 풀어놓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죄를 인정하며, 새롭게 살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십시오. 새 생명의 주님에게 자신의 깨어진 인생의 화병을 넘겨 드리십시오. 깨어진 자신의 화병을 들고 십자가로 나아가는 모든 믿음의 성도들 위에 주님의 치유의 광선이 비치기를 기원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