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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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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영생이라고 하면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후에 신자들은 천국에서 영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러한 사후의 시간적 개념보다는 지상에서의 질적 삶에 초점을 둔다. 신약 성경에서 영생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세 가지 측면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진술한다.   

 

첫째, 처음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

▶ 요한복음에서 ‘영생’이라고 할 때에는 강조점이 흔히 ‘첫 걸음’에 있다. 즉 파멸로 가는 길에서 나와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믿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요 3:15,16, 36; 10:28).

▶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구약 성경을 가졌다고 해서 영생도 가졌다고 생각했다(요 5:39).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첫 걸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

▶ 요한복음 4:36절에서 예수님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수확을 하신다. 사마리아인들이 그에게 많이 와서 믿었다.

▣ 행 13:46, 48; 딤전 1:16에서도 이와 유사한 강조점을 볼 수 있다. 즉, 영생의 첫 출발에 대한 것이다.

 

둘째, 점진적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매일의 체험을 가리킨다.

▶ 일반적으로 말해서 신약은 크리스천 삶의 첫 단계에 대한 강조보다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명 속으로 지속적이고 점증적으로 들어가는 날마다의 체험에 초점을 둔다.

▶ 요한복음에서도 ‘영생’은 첫 구원의 첫 단계를 가리킬 때가 많다. 그러나 영생을 처음 믿을 때의 순간적이고 단회적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영생은 우리들이 처음 믿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요 3:36; 5:24). 그래서 요한은 영생을 계속해서 솟구치는 샘물에 비교하였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 영생은 수고하여 받는 것이다. 영생을 번다는 말이 아니다.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자양분을 받아 먹는 일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영생은 한 번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물론 출발점이 있다. 그러나 평생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영생의 빵이다(요 6:47-48).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날마다 먹었듯이, 예수님에게서 양식을 받아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생명을 얻고, 생기를 갖게 되며 하나님에 대해서 생동할 수 있다. 이것은 부활에까지 이른다(요 6:40,54).

 

▶ 실제적으로 이러한 체험은 예수님의 말씀을 날마다 경청함으로써 온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

예수님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하시는 말씀이 영속적인 영생의 근원이다(요 12:49-50).

요한복음 12:25절에서는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을 때 영생을 체험한다고 말한다(요 12:25). 우리들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하여 살 때에 ‘영생’을 체험한다. 성령에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에너지와 기쁨을 거둔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서 타오른다.

 

셋째, 예수님의 재림 들어가는 영생이다( 25:46)

▶ 마지막 단계의 영생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받는다. 그때 의로운 자들이 영생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오는 세대’에서 마지막 단계의 영생을 갖는다(막 10:30; 눅 18:30).

 

▶ 우리는 이 날에 큰 축복을 받도록 잘 살아야 한다. 즉, 영예와 불멸과 ‘영생’(롬 2:7)을 받기 위한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영생을 취해야 한다. 붙잡아야 한다(we have to lay hold of eternal life. 딤전 6:12). 처음 믿을 때 영생의 삶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9).

영생은 좋은 터전을 닦아서 오는 것이다. 이 구절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로마서 6:23절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경건한 생활의 마지막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체험하는 것이다.

 

▶ 마지막 단계의 영생이 어떠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에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생기와 활력이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영생의 샘이 우리 속에서 흘러 넘칠 것이다. 우리는 밝은 태양 광선처럼 거룩으로 빛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으로 날마다 충만한 생동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현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은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원한 영생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리 및 교훈》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

♣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택할 수 있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영생을 부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썩을 것을 거둘 수 있다.

♣ 그럼 우리들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변함이 없다. 칭의는 상실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위치는 영원히 안전하다. 하나님은 의롭게 한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롬 8:30). 그럼에도 우리들 앞에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우리들은 썩을 것을 거둘 수 있다(갈 6:8).

우리들의 위치는 상실되지 않지만 우리의 위치가 부패될 수 있다. 우리들의 생명이 시들어 죽을 수 있다(롬 8:13).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

♣ 우리들이 이 영생을 체험으로 알려면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이 필요하다. 이 생명은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에 받는다. 그러나 체험을 하려면 우리 편에서 취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는 영원한 생동의 소망을 지니고 그것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선물이다.

 

이 생명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ㄱ. 현재의 체험이다.

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이 생명을 즐기는 것이다.

ㄷ.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갖는 교제이다.

ㄹ. 하나님의 격려와 가르침과 교훈과 명령을 따르면서 오는 행복감을 즐기는 것이다.

ㅁ. 예수님이 우리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 체험하는 영적 동력이다.

ㅂ. 주님을 사랑하고픈 강렬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ㅅ.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미소와 인정을 체험하면서 갖는 안정감이다.

ㅇ. 하나님의 구원의 거대성과 사랑의 깊이를 깨달으면서 환희에 젖는 것이다.

ㅎ. 고난과  불편을 참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힘쓰는 가운데 받는 영적 기쁨이다.

 

◐ 영생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온다. 그 다음은 우리들의 몸을 산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릴 때에 ‘더 충만하게 흐른다. 이것은 매일을 기준으로 우리들에게 공급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을 체험하는 것이며 기쁨과 안전을 누리는 것이다. 영생은 오는 세대의 약속일 뿐만 아니라 구속받은 자들이 누리는 생명의 질이기도 하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 살아 있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체험되는 영적 축복들이다(요 17:3).

 

◐ 지상에서 누리는 영생은 역동적이다. 정체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이며 다양하고 다채롭다. 영생을 사후에 영원히 죽지 않는 고정된 생명으로 생각하면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지상에서 누려야 할 영생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사후의 영생도 하나님과의 끝없는 교제와 풍성한 체험으로 더욱더 충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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