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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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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십일조는 종류와 용도에 있어 구약시대의 십일조와 일치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성전 제도 아래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신정 공동체를 위해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십일조의 유례, 십일조의 종류와 용도, 십일조와 비슷한 의식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의 유례

십일조 제도는 성경에서만 시행된 관습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바벨론, 그리스, 로마와 같은 고대 문명에서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쳤던 종교적 관례였습니다. 성경에서도 십일조의 관습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이라는 살렘 왕에게 십일조를 바쳤고( 14:17-20) 족장들의 시대를 거쳐( 28:22) 출애굽이라는 구원사건을 기점으로 십일조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율법으로 규정되었습니다( 27:30-33).

그런데 율법으로 제정되기 이전의 십일조나 율법 이후의 십일조는 내용에 차이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그가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바친 까닭은 그의 조카인 롯을 잡아가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여러 왕을 이기고 롯과 그의 권속을 모두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4:14-16).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기 소유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동시에 자기를 구원하신 구속주에 대한 감사의 예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도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감사하고 그들의 주인이 바로 왕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서도 분의 일은 분의 십을 대표하는 상징적 분량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율법 규정에 의한 십일조가 아닌 자원 감사헌금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는 율법에 의한 의무 사항이었습니다. 그래도 율법으로 십일조가 제도화되기 이전이나 이후가 동일한 내용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소유와 구원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신뢰하는 믿음의 물질적 표현이었습니다.

 

◐ 구약 시대 십일조의 종류와 용도

이 부분은 5장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행하는 십일조는 한 가지 종류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이었습니다.

첫째, ‘매년 십일조’입니다. 해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서 소산의 십 분의 일을 중앙 성소로 가져갔습니다(신 12:6-18; 14:22; 민 18:21, 24).

둘째, ‘매 삼 년 십일조’입니다. 삼 년마다 십일조를 자기들의 성읍에 저장하고 거주 레위인을 포함한 가난한 주민들에게 사용했습니다(신 14:28-29; 26:12).

그런데 ‘매 삼 년 십일조’가 레위인을 위해 성소에 가지고 가는 ’매년 십일조’를 삼 년에 한 번씩 생략하고 각 성읍에서 사용된 것이었는지 혹은 별도로 부과된 구제용 십일조였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편, ‘매년 십일조’를 성소에 가지고 갈 때 일부를 백성의 회식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신 14:22-27).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경배자와 레위인이 함께 의식용으로 먹은 별도의 절기 십일조였다고 보기고 합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자기들이 받은 십일조의 몫 중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제사장들에게 바쳤습니다(민 18:26, 28).

 

십일조에 대한 성경 본문들은 십일조의 종류를 확정 짓는데 다소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십일조는 용도별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십일조의 용도와는 퍽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십일조를 단순히 목회자 생활비와 회중의 회식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매달 십일조를 교회에 가지고 갈 때마다 교회에서 사역비를 제외한 나머지 일부를 교인 전체를 위한 회식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셨습니까? 십일조가 목회자 사례비로 쓰여도 나머지를 교인들의 회식비로 지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매 삼 년마다 지역민들을 위한 십일조를 모아 두고 구제비로 쓰지도 않습니다. 또한 사역자들이 십일조 수익에서 받는 사례비에서 자기들의 십일조를 떼지만, 레위인이 제사장들에게 바쳤듯이, 다른 사역자들을 위해 제도적으로 십일조의 십일조를 다시 떼어서 바치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교회의 십일조는 종류와 용도에 있어 구약 십일조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성전 시스템 아래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신정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에는 성전 제도에 버금가는 제사를 위한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이 없으며 이스라엘과 같은 믿음의 권속들이 무리 지어 사는 종교 집단으로 구성된 공동체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일조의 집산지며 소비 센터인 성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십일조와 비슷한 의식들

구약 시대 십일조와 비슷한 의식 중에는 소산의 맏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의 첫 수확을 필두로 추수 때마다 처음 익은 열매의 맏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신 26:2, 10; 출 23:19). 첫 소산의 맏물을 모든 수확의 대표로 드리는 것이었으므로 십일조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소산의 맏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모든 수확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였다는 점에서도 십일조와 유사합니다.

또한 초태생 대속이라는 의식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의식들은 주로 출애굽의 구원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초태생 대속도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이 애굽인의 장자들과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모두 죽이신 반면, 이스라엘의 장자들과 생축들은 모두 살리신 사건에서 연유되었습니다(출 11:4-7; 13:14-15; 민 8:17). 초태생 헌물은 처음 난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 헌물의 의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민 3:13; 출 34:19).

둘째, 초태생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대표의 원리입니다. 처음 난 것만 하나님께 바친다고 해서 두 번째부터 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시 50:10-12).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라면, 처음 태를 연 자를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는 계속해서 따르게 될 후손의 생명을 등에 업고서 드리는 대표로서의 헌물인 셈이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첫 열매 헌물은 전체 수확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되돌려드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레 23:10-11). 바울은 이 뜻을 예수님의 부활에 적용하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라고 했습니다.

셋째, 초대생 헌물의 또 다른 특징은 대속(代贖) 사상입니다. 원래 초대생의 수컷들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출 13:2). 그러나 생축만 희생제물로 제단에 바치고 사람은 대속하게 했습니다. 한편, 경제적인 이유나 흠이 있는 부정한 동물인 경우는 어린 양과 같은 다른 동물로 대치될 수도 있었고 제물로 바치길 원하지 않으면 해당 초태생 동물을 죽이면 면제될 수도 있었습니다(출 34:20; 민 18:15). 그러나 사람의 초대생은 예외 없이 “반드시 대속”(민 18:15; 출 34:20)해야 했습니다. 그 까닭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유월절 양의 피로써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출 12:13).

 

초태생 장자의 대속 방법은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민 18:16)로 대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자들을 대속하는 중요한 이유는 동물 초태생과는 달리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하나님께 바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창 22:12; 민 3:40-51). 그래서 장자의 대속금(속전)이 성전 봉사를 하는 제사장에게 지급되었습니다.

초태생들을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하나님께 봉사하게 한다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낸 또 다른 대속 제도는 레위인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해서 성막 봉사를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민 3:41; 8:14-17). 요셉과 마리아도 성결 예식과 초대생 규례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갔습니다(눅 2:7, 22, 23). 예수님이 하나님께 바쳐진 사건은  대속주로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의 구속을 위해 내어 드릴 것을 내다보게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러니까 초태생 대속도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과 대표로 드려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십일조와 매우 흡사한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소산의 맏물이나 초태생 헌물은 하지 않으면서 십일조만 내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상 십일조에 대한 지시가 담긴 본문들에서 우리는 여러 다른 헌물들과 함께 곡식 제물과 초태생 제물에 대한 율법의 요구도 동반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참조. 신 12:6). 만일 우리가 성전의 각종 헌물과 함께 언급된 십일조를 오늘날도 내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번제물과 화목제물과 십일조와 높이 들어 바치는 곡식제물과 서원제물과 자원제물과 소나 양의 처음 난 것”(신 12:6, 새번역)을 모두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구약 의식법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럼, 예를 들어 신명기 12장 6절에 나오는 다른 모든 의식법에 속하는 헌물제사는 끝이 났는데 그중에서 유독 십일조만 계속 남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만일 우리가 신명기 12장 6절이 제사 제도에 대한 의식법임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십일조도 의식법에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십일조를 의식법의 한 규례로 보지 않더라도 십자가의 원리에서 보면 다른 의식 제도의 종결과 동일 선상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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