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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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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무엇인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예수님일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럼 비복음적이라고 한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을 안 믿는다는 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비복음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복음적인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거나 신자로서 그릇된 처신을 하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것들을 행하는 신자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고 권면하였습니다.

복음은 정의하기 나름입니다. 좁은 의미로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혹은 넓은 의미로 ‘복음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행하신 일과 그에 대한 죄인들의 올바른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이해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주어야 할까요?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행 16:31)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마가복음 1장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복음”(갈 1:7; 빌 1:27)이라고 불렀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는 명령은 예수님을 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복음은 한 묶음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천사가 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은 곧 그리스도의 탄생이었습니다(눅 2:11). 복음과 예수님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고후 11:4). 복음을 믿으라는 말이나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은 동전의 안팎과 같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느냐고 물으면 복음의 정의에 따라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단순히 ‘주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면 ‘예스’ 대답이 나오고, 복음의 정의를 ‘예수를 믿는 것+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면 ‘노’가 될 것입니다. 전자는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이라는 대답이고, 후자는 믿음+행위라야 구원이라는 대답입니다. 이 두 갈래의 엇갈린 주장들은 지금도 신학계와 교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복음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의에 붙잡히지 말고 성경 본문 자체에서 해답을 얻는 것입니다. 정의는 신학자들이 내립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신학 체계를 새워놓고 그 틀 안에서 성경의 개념을 정의합니다. 문제는 신학자들에 따라 정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움도 주지만 혼란도 일으킵니다. 우리는 학자의 소명을 받지 않은 이상 그들처럼 전문적인 많은 연구를 한 후에 비로소 어떤 결론에 이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반 성도의 입장에서 성경 본문 자체를 공부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하나씩 깨달아 가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 본문을 내 앞에 놓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깨닫도록 힘쓰십시오. 상식적인 방식이란 문장을 대할 때 문맥이나 단어의 뜻이나 혹은 역사적 배경이나 주제나 중심 교훈이나 저자의 의도나 관련 구절 등을 살피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참고 서적이나 쉽게 쓴 좋은 강해서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읽는 성경이 내게 가장 은혜로워야 합니다. 이제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을 어떻게 진술했는지를 살피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믿었기에 복음을 위해 목숨도 걸었습니다. 그는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복음 선교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로마로 가려고 한 것도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복음을 그처럼 귀하게 여긴 까닭이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줍니다.

복음은 사람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국경과 인종과 문화와 신분과 성별과 나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입니다. 사도요한은 믿으면 곧 영생(구원)이라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세상에 이처럼 공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라고 하였고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은혜 구원’이라고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믿음만 있으면 선한 행위가 없어도 천국 간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행은 타종교에서도 권장합니다. 물론 신자에게는 ‘복음에 합당한 삶’(빌 1:27)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첫 구원에 관한 한, 유일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둘째,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믿지 않더라도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죄의 세상입니다. 죄인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날마다 온갖 죄악이 범람합니다. 죄의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음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능력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복음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출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자신의 체험으로 압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려고 작정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당시 로마는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지만 오늘날의 대도시처럼 온갖 종류의 부패와 죄악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으키는 매우 탁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죄를 떠나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직접 간접으로 죄에 물들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이 세상을 벗어난다고 하여도 죄를 안고 떠납니다. 인간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우주선을 발사하는 플로리다의 Kennedy Space Center 지역에 삽니다. 집에서도 하늘로 치솟는 로켓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런데 지구의 궤도를 벗어났다 돌아오는 우주비행사들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인으로 떠났다가 다시 죄인으로 돌아옵니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수도가 아무리 발달했어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복음이라고 믿었습니다. 문화가 인간을 바꾸지 못합니다. 복음만이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품고 로마로 향하였습니다. 우리도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는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할 것입니다.

 

셋째, 불의한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불순종으로 타락했을 때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하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하나님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하나님의 생명을 누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날마다 죽음을 안고 사는 불치병 환자와 같습니다. 인간은 날마다 자신의 관을 끌고 다닙니다. 그럼 살길이 없을까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 (마 19:27).

 

인간의 허무한 운명을 하나님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편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다 행하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 곧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죄가 없는 완전한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완전한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자기 힘으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일단 지은 죄는 용서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용서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시 51:4).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럼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대신 형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달렸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치렀어야 할 죗값을 지불하시고 죄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제 주 예수를 자신의 대속주로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입혀집니다. 그 순간부터 에덴동산의 삶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과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가지셨던 원래의 선한 뜻이 성취되게 합니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안식으로 연결되는 새 창조의 삶입니다.

 

넷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 복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합니다.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요일 3:1).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은 살고, 죄 없는 예수님은 죽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하나님의 의는 죄 없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십자가 사랑입니다.

 

♠ 복음은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씌워 죽게 하였듯이, 죄인에게는 예수님의 완전한 의를 씌워 마치 죄인이 죄 없는 자로 여겨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서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 복음은 죄인이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롬 4:5)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인간의 가치로 보면 이것은 오히려 불의한 일입니다. 일한 것이 없는데도 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품삯을 지불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편은 하나님입니다. 아들을 희생시키고 죄인을 풀어주는 것은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공의 개념으로 판단할 수 없는 차원의 사랑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예수님의 의가 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이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근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나는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 덮여서 하나님의 눈에 전혀 죄가 없는 의로운 자로 보입니다. 이 일에 어떤 인간도 자신의 경건이나 선행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구원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엡 2:9; 고전 1:31). 그렇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롬 1:16, 표준새번역)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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