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 (2)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4-15).
본문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무엇인지를 진술하는 가장 간략한 요약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신약 성경 전체에 나와 있고 구약 시대에까지 소급됩니다. 방대한 복음은 누구도 충분하게 다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골자는 제시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구약에서 예언되었습니다.
복음은 갑자기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백성이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행 3:18-26). 그중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시기 직전에 있을 세례 요한의 사역이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의 메시지에 실려 있습니다(막1:2, 3).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인간의 아이디어나 계획이 아니고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임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이 변경시킬 수도 없고, 거부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단지 복음을 듣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님과 별도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복음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밀착 관계에 있다. 사실상 일치된 것인데 다른 병행 본문들의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막 1:15).” (TNTC Mark, E. Schnabel, p.241).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 8:35).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29).
복음은 예수님의 인격과 행위에 배여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오셔서 전하신 메시지와 축귀, 치유, 양식 공급, 십자가 희생, 부활과 같은 여러 구원 활동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이 복음의 본체이며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그의 복음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됩니다(1:15).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복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복음은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기에 복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의 원천입니다. 복음은 계시된 것이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복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첫 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고 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면서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요 1:14; 고전 11:23; 요일 1:1-4; 계 1:1-2, 11, 19). 우리는 그들의 증언과 그들이 전수받은 복음이 기록된 신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듣습니다.
복음은 때가 찼을 때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역사의 한 시점에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의 때에 발생된 사건이었습니다. 복음은 아무렇게나 임의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와 경륜에 따라 미리 준비되고 예언되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담과 하와에게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고하셨고(창 3:15, 21)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도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의 씨가 영원한 왕위에 앉게 되고 그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삼하 7:12-13; 시 89:3-4). 다윗의 씨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마 1:1; 막 1:9-11; 9:7).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마 1:23)고 예고하셨습니다. 마태는 이 대망의 아들을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에 적용하고 그를 “유대인의 왕”(마 2:2)과 “이스라엘의 목자”(마 2:6)라고 불렀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종말론적 계시를 주셨습니다(단 7:13-15). 다니엘의 환상에서 인자 같은 이는 천하의 권세와 영광을 받고 만국을 통치하는 분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게 영원한 왕권을 위임하여 대행시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들입니다. 예수님은 다윗 왕권이 실현할 수 없었던 하나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의 참 성전을 지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성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메시아의 소명을 성취할 것이었습니다(막 14:60-62; 요 2:19; 계 19-20장).
때가 차서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복음의 역사성이나 영원성을 말하기보다는 복음 이벤트에 초점이 잡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메시아의 나타나심이 드디어 현실이 된 때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던 때가 지나고 하나님의 신세계의 통치와 능력이 마침내 드러나는 구원의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복음 선포를 위한 성육신 준비가 끝났을 때 아들을 보내셨습니다(마 2:1; 갈 4:4).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때가 되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에 계신 아들을 통해 인류를 구속하고 계십니다.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관계된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몸값으로 내놓기 위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막 10:45).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요 1:29).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사탄의 길을 택했을 때 인류의 운명은 사망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창 3:19).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써 죄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또 다른 목적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빛내게 하고 선하고 거룩한 새 생명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막 1:15; 롬 6:4; 마 5:13-16; 엡 2:10).
인간은 자력으로 죄와 사망의 형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합니다. 온 인류가 타락 이후 지금까지 죄로 인한 온갖 폐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불의와 악행이 잠시도 쉬지 않고 날마다 계속됩니다. 사망이 아직도 왕 노릇 하지 않습니까? 복음은 이러한 인간의 속절없는 불행을 근본적으로 처리하고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을 주는 것이기에 복된 소식입니다. 복음이 복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복음은 나의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믿음으로 받습니다. 복음을 믿는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사역과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생을 받습니다(요 1:12; 3:16). 복음은 인류의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과 죄의 문제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해결해 줍니다. 만약 각자의 행위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면 세상에서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며 혼자 힘으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3:10-12). 구원은 내 편에서 아무 하는 일이 없이 무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단지 복음을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선물로 받습니다(롬 4:5).
둘째, 복음은 율법처럼 일정한 규정으로 통제되는 삶을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에 따른 자유를 성령 안에서 누리게 합니다(갈 5:13-14; 25; 6:2). 복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설명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고 용서와 화해, 치유와 기쁨, 평화와 나눔의 삶을 가르칩니다.
복음은 현세의 어려움을 견디게 하고 내세의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심어줍니다. 이것은 법적인 명령이나 위협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와 조명에 의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더욱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과 약속들을 확신시켜 줍니다. 그래서 복음은 거룩한 삶의 원동력이며 경건 생활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이기에 복된 소식입니다.
셋째, 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로 선포합니다. 구약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일꾼들은 앞으로 오실 마지막 때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내다보게 하는 화살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종말에 나타날 메시아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인물로 보았습니다. 즉, 다윗 왕조의 영광을 회복하고 열국을 제압하기 위해 로마의 압제를 무력 혁명으로 퇴치하는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고(요 6:15) 제자들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시킬 날을 고대하였습니다(행 1:6). 그러나 예수님은 통속적인 메시아관을 부인하고 자신의 죽음으로 메시아의 소명을 성취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은 아무도 원치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극구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막았습니다(막 8:31-33). 그들이 생각하고 기대한 메시아는 자신의 대속적 죽음으로 백성을 구원하는 자가 아니고 살아 있으면서 백성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하는 구원자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리스도(메시아)가 무엇을 위해 세상에 오셨는지를 제쳐두고 주님은 나의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처럼 오해합니다. 대부분의 교인은 메시아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분의 뜻과 목표에 맞추어 살려고 하기보다는 나 개인의 필요에 몰두하여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과연 어떤 메시아인지를 먼저 분명하게 알지 않으면 예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의 삶으로 대속주의 자격을 인정받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죄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살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죄는 고사하고 자신의 죄로 죽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인류의 죄를 씌우시고 십자가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써 죄인들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고후 5:21).
예수님의 구원 행위의 핵심은 십자가 희생의 대속적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로마를 무력으로 정복하는 혁명가가 아니고 죄를 정복하고 사탄을 이기는 메시아입니다. 그는 폭력의 자리에 사랑과 용서를 심고, 뒤틀린 관계를 화해와 치유로 바로잡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희생을 통해 구약 시대의 속죄 제사의 목표를 달성하였고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렸습니다(롬1:18; 4:25; 5: 9-11; 엡 2:3; 요일 2:2). 그는 하나님의 유월절 양으로서 단번에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구약 시대의 상징적이고 잠정적인 속죄 제사 제도를 종결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말할 때 십자가에 “내줌”(롬 4:25; 8:32; 행 2:23)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넘겨주신 것은 예정하신 뜻이었고 미리 알고 계셨던 일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사전에 계획하시고 준비하셨다가 인간 역사의 한 결정적인 시점에서 드러내신 구속 사건입니다. 이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과 큰 사랑의 증거입니다(엡 2:4-5). 그래서 복음은 기쁘고 좋은 소식입니다.
맺는말
인류의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아무도 죄를 거두어갈 수 없습니다. 인류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마수에 사로잡혀 날마다 죄로 초래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과 불행을 겪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흠 없는 삶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대속의 죽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 받으면 죄 사함을 받고 나에 대한 심판이 거두어집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도 나를 위한 것으로 믿을 때 그분의 부활 생명에 내가 연합되어 영생의 삶을 누립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원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인류의 조상인 첫째 아담이 실패했던 순종의 삶을 완전하게 사셨습니다.
◐ 예수님은 죄 없는 자신을 새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가 바라보았던 온전한 속죄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의 진노에서 죄인들을 구출하여 하나님과 화해시켰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로 사탄의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과 대속주로 믿으면 사탄이 다스리는 죽음의 통치에서 벗어납니다. 신자는 더는 악한 사탄의 영역에서 노예처럼 살지 않습니다. 신자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망의 정죄에서 헤어날 수 없는 죄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거룩한 의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속한 신자들을 거룩한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 3:24; 엡 2:7-9). 우리는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새 생명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따라 선을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마땅한 반응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