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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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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17절)

 

회심(conversion)이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살다가 마음을 돌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심은 구원과 유사어입니다. 구원은 넓은 의미로 사용할 때에는 구원의 모든 과정을 포함합니다. 회심은 구원의 첫 단계입니다. 처음으로 주 예수를 믿고 첫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이 회심과 더 가까운 말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에는 구원을 받기 전에 인간의 영적 상태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회심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만 강조점은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세금 징수대에서 일하던  레위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본 사건에서 구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회심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회심에 필요한 단계나 과정이나 어떤 절차가 있을까요? 예수를 믿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회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과정이 있었던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심 자체는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바울처럼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지만 언제 회심했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교회 생활을 했다면  자신의 회심 날짜나 시기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언제 어느 날 회심하게 됐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회심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회심을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이 주 예수를 구주로 믿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회심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적인 사건입니다. 이런 실례는 신약 성경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습니다. 

 

☞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천 명이었습니다(행 2:41, 47). 이들은 몇 주 전만 해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빌립보 간수도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현장에서 즉시 구원을 받았습니다(행 16:31-34). 그는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회당에 다닌 적도 없었고 성경을 읽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조금 전만 하여도 바울에게 매질했던 자였습니다.

☞ 에티오피아 내시는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를 하러 갔었고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그의 마차에 다가가서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설명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즉시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26-40).

 

레위의 경우에도 회심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레위는 세금 징수대의 현장에서 구원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한 말씀’으로 그를 제자로 부르셨고, 레위는 ‘한 동작으로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그는 즉석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에게 아무런 사전 준비가 없었습니다. 그는 구원을 받기 위해 먼저 회당에 다니면서 말씀을 들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로마제국을 위한 세리였기 때문에 회당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기 위해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13세기 로마 가톨릭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였던 16세기의 칼빈은 그런 사전 준비가 전혀 불필요하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사전에 삶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다른 무엇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앞에 도덕이나 선행을 놓아서도 안 되고  자신의 갖가지 종교행위를  놓아서도 안 됩니다.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신자가 된 이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좁은 문이 아니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좁은 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를 따르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은 이후에 자기 십자가를 지는 좁은 문을 택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기 전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패할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구원은 십자가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다른 것을 거쳐서 닿는 곳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는 순간에 나는 십자가 속으로 곧바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구원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쉽기 때문에 십자가 구원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기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보지 않고 자기를 보면 뭔가 주눅이 들고 떳떳하지 않은 일종의 죄책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선뜻 구원의 초대에 응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현재 나에게 정리되지 못한 도덕적인 문제가 있어서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보거나 쑥스럽게 여긴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내 죄를 어느 정도라도 좀 청산하고 주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는 체면 문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가는 데에도 체면을 생각하는 듯합니다.

 복음은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을 예수님이 나 대신 다 행하셨다고 선포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의 모든 죄를 걸어 놓고 정리되었다고 외칩니다. 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에 매이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 예수의 대속을 믿으십시오. 양심에 걸리는 일들이 있어 그냥 주께로 나가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스스로 더러운 양심을 씻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오염된 양심을 씻기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내 양심이 불편하여 주께 나가는 일이 염치없다고 구원을 미루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내가 받았어야 할 형벌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지고 가신 대속주라고 믿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현재 부도덕한 죄에 빠져 있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습니까? 레위는 죄인의 자리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죄를 멀리하는 크리스천의 거룩한 삶은 먼저 예수님께 마음을 돌리는 회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먼저 믿고 나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자신의 삶을 먼저 바로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나의 선행이나 도덕적 청산이나 깨끗한 양심이 나의 구원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그냥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받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지 않던 마음을 돌려 그분을 구주로 신뢰하면 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사전 절차나 도덕적 청결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력서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신용등급이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현재 처해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잘난 모습이든지 못난 모습이든지 상관하시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겠습니다」라고 진정한 마음으로 한마디 하면 됩니다. 그렇게 꼭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면 됩니다.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레위의 집에서 식탁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이 구원의 초대를 받기 위해 어떤 사전 절차를 거친 것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즉석에서’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고 ‘즉석에서’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 편의 준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세상 창조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을 향해 "빛이 있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빛이 생겼습니다(창 1:3). 이것이 첫 장조입니다. 회심하고 구원받는 것은 새 창조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엡 2:10).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물질계의 첫 창조나 영적 새 창조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한 말씀으로 즉시 이루어집니다. 개인의 삶을 뒤돌아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무의식적인 사전 준비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회심을 그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한 즉각적인 변화로 봅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돌려놓았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수입이 좋은 세리의 직업을 버렸습니다. 레위의 삶이 극히 짧은 순간에 전격적인 방향 전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그가 예수님에게로 마음을 돌린 후에 일어난 일임을 주목해야 합니다.

레위는 세리직을 먼저 그만두고 나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레위에게 변화가 온 것은 그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회심을 한 사람들이 모두 레위와 같은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회심이 가져오는 변화의 능력입니다. 요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 때는 불과 몇 분 안에 회심의 기적들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전격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레위가 한순간에 모든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그는 세리직을 떠나는 일에서는 전적인 변화를 보였지만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장기간에 걸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제자의 삶을 익혀나갔습니다.

 

신자가 되는 일에 또 다른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용서를 받는 것까지는 좋은 일이지만 그다음부터 사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주저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신자가 되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그것이 염려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염려가 구원받는 일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았으면 마땅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은혜 구원을 받았으면 절대로 안전합니다. 구원을 잃거나 자격 미달이라고 나중에 취소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구원 이후의 새 삶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 삶은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받고 성령의 능력에 의존해서 사는 새 생명의 삶입니다. 그래서 부족함과 실수와 여러 죄에 빠질지라도 회복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삼손, 요나 선지자, 다윗, 베드로 등이 모두 크게 넘어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어 재소명을 받고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는 회심 이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으로 인도됩니다. 회심하면 성령을 받고 주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처음부터 겁을 먹고 나는 신자로서 살 자신이 없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자신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회심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회심이 즉각적이라는 사실은 은혜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순전히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이라면 구원받은 이후에도 은혜로 임하실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주님에 대한 사랑이 일어나게 하시고 내 삶의 목적과 방향과 성향이 달라지게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려는 욕망이 강해집니다. 죄를 멀리하고 살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을 의존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구원의 복음이 더 깨달아지고 영적으로 자라게 됩니다.

은혜 구원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의 신앙생활에 기복이 있고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죄에 넘어지고 유혹에 빠지는 육신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신실하셔서 십자가 은혜로 구원하신 자녀들을 버리지 않고 돌보십니다. 은혜 구원을 믿는다면 구원 이후에 오는 이러한 회복의 은혜도 믿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회심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은 값없이 받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거나 여러 날의 금식 기도를 해야 하거나 헌금을 많이 해야 하거나 교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봉사에 헌신해야 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면 보통 사람들은 구원을 못 받을 것입니다. 회심은 우리 편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회심은 거듭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둘째,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억만장자든지 홈레스든지, 많이 배운 자든지 적게 배운 자든지, 잘생긴 사람이든지 못생긴 사람이든지, 백인이든지 흑인이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누구나 동일한 복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계급 공동체입니다. 모두 죄인들이며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자신을 의인이 아닌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자들이라면 모두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2:17).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대통령이나 대기업의 총수가 교회에 들어와 앉아 있어도 옆에 있는 일반 성도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의 직업이나 직분이나 돈이나 학벌 등을 따지고 사람을 구별합니다. 그러나 복음 앞에서는 아무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입니다. 바울도 우리도 차이가 없습니다. 바울도 은혜로 자신의 공로 없이 구원을 거저 받았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목사도 일반 신자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일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자들은 없어야 합니다. 돈 있다고 직분 주고, 직업 좋다고 우대한다면 복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갱신되려면 이런 세속적 가치관과 그릇된 교회 풍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차등 사회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장로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직업이 천하거나 학력이 낮아도 자신의 은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특수층이 따로 있는 것은 복음이 바르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약 2:1)

우리가 서로 차별하는 것은 “약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약 2:4)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를 돌아보십시오. 이런 악행을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교회는 날마다 죄를 짓는 곳이 됩니다. 우리는 야고보서의 이 노골적인 지적에 귀를 막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다 믿는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교회 내에서조차 바르게 적용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복음의 진모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우리 교회당에 들어와서 보고 “아 이 교회에는 차등이 없이 말 그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우리 자신들도 복음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알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심은 나눔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자신에게 일어난 회심에 대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감사하기 위해 다른 여러 세리를 불러 잔치를 열었습니다. 많은 죄인이 예수님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실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죄인들도 죄의 용서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레위처럼 구원을 받았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실질적인 표현입니다. 이 같은 실제적인 감사를 하는 것이 신자들의 당연한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예수님이 다른 죄인들에게도 내가 받은 용서를 선포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드리십시오. 주님은 내가 차리는 죄인들을 위한 잔치석에 기꺼이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전도를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회심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언제 누가 어느 순간에 회심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씀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2).

이 권면은 디모데에게 준 것이지만 일반 성도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유사한 내용으로 권면하였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벧전 3:15, 표준새번역).

 

 

맺는말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도사들의 일만이 아니고 모든 신자의 소명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강해하고 공부하는 목적의 하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불신자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회심은 즉각적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닫힌 마음이 순식간에 열리고 어둠에 처했던 사람이 빛의 세계로 즉시 옮겨집니다. 그래서 회심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능력입니다. 이러한 회심의 은혜 속에서 레위처럼 하나님의 즉각적인 구원을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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