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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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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의 제목은 “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새삼스러운 질문처럼 들릴 것입니다. 당연히 내 믿음은 나에게서 온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믿음이 아닌 내 믿음으로 주 예수를 믿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의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은 피동적인 수단입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이란 내 믿음에 달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것이지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서 구원의 능력이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단지 구원의 선물을 받는 수단입니다. 내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을 받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자칫하면 ‘내 믿음’을 구원의 근거로 보기 쉽습니다.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이런 의미로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즉, ‘내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믿음을 행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나의 구원은 은혜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내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엡 2:8).

 

우리는 믿음 만능을 외칠 때가 많습니다. 흔히 이런 구절들을 인용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히 11:33-40).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약 5:15).

 

이런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그런 문맥을 무시하고 내가 힘주어 믿으면 소원 성취한다는 식으로 대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라는 판에 박힌 세뇌적인 상투어를 반복하면서 회중을 기만하는 목회자들은 지금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최면사들이지 복음 전파자들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런 식의 믿음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믿음은 적극적인 사고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믿음이 강하면 구원도 받고, 병도 낫고, 소원하는 일이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역할은 초능력을 일으키는 신비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구원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그릇에 해당합니다.

 

☞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빵을 누가 건네주었을 때 손을 내밀어 빵을 받아먹었다면 그 사람이 산 것은 빵 때문이지 손을 내민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이 한 역할이 무엇입니까? 단지 선물을 받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 손이 생명이 된 빵을 돕거나 공로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 손에 해당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피동적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호의를 받기 위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자신들에게 결핍된 것을 그리스도로부터 받을 뿐이다” (칼빈, 기독교 강요).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하면 우리의 믿음은 하나의 행위가 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인가 자랑할 것이 있게 된다 ····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된다. 믿음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것은 칭의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다.”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1권).

 

우리의 믿음은 역할상 피동적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는 입장이므로 피동적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일까요?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구원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내가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증거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만인을 위한 것입니다(요 1:29; 3:16-18; 딤전 2:6; 요일 2:2). 그런데 십자가 구원의 오퍼를 받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로 가셨지만, 그분의 대속은 그 자체로서는 자동으로 누구에게나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자신에게 십자가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마치 수취인이 내 이름으로 된 소포를 우체부가 배달했을 때 그냥 받으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수취를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발신자에게로 돌아갑니다. 내가 십자가 구원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믿을 때 구원의 효과가 발생합니다. 내 이름으로 온 소포를 받아야 그 선물이 내것이 되듯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십자가 구원의 오퍼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받을 때에 비로소 구원이 나의 소유로 확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롬 3:25, 표준새번역).

 

 

성경은 믿으라고도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성경에는 이율배반적이거나 모순처럼 들리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양편 다 동등한 타당성과 합리성이 있어서 어느 한쪽만을 취하거나 양편을 조화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의 경우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당장 생기는 질문은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인데 왜 지옥에 가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아직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믿지 않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들을 배척하자 이방인 선교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 13:46).

유대인들은 스스로 복음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당연히 유대인 자신들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을 때도 항상 많은 반대를 당하셨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 3:3)고 했습니다. 그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나누어졌습니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설득했지만, 그의 말은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행 28:23-24).

 

성경은 사람이 안 믿는 까닭을 복음을 듣고 거부하는 당사자와 사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 앞으로 온 소포를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안 받겠다고 수취 거절을 할 수 있듯이, 복음 메시지와 예수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지 않는 것은 나의 결정이며 그 결과도 나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일 뒤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사탄의 활동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3-4).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안 믿는 것,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일 등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영적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만물을 통제하십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께 속해 살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은 사탄의 수중에 들어가 있습니다(요일 5:19; 요14:30).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세상의 임금 노릇을 하며 세상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지배합니다.  불신자들은 복음을 자신의 의지로 배척하지만, 실상은 사탄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영적 눈이 닫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는 책임을 사탄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비록 사탄의 영향을 받고 있어도 복음의 빛이 비치었을 때 눈을 뜨지 않고 의식적으로 감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둘째,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면 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내가 스스로 자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15:6 4:19-22). 그래서 믿음의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근원을 따진다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엡2:8). 믿음이 은혜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흠 없는 한 백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되도록 그들을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하기로 예정하셨습니다(엡 1:3-6).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우선 복음의 진리를 인식하고 그 필요성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하나님과 적대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복음의 진리를 대항하는 어둡고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오시는 메시아 시대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이러한 성령의 내적 갱신에 의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인이 복음을 믿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과 구원이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서 활동하시는 사역은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결과적으로 성령의 내적 갱신을 인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치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내적 사역이 일어나면 복음과 하나님을 저항하던 완고한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복음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구원의 메시지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복음의 빛이 비칠 때 의도적으로 눈을 감지 않는 것입니다. 완고하고 원치 않는 마음은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열려 있고 원하는 마음은 믿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는 것은 믿음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 12: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불완전한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좋고 강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속에서 나오는 자생적인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 덕분에 받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 사도행전에 나오는 루디아가 어떻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까? 그녀의 믿음이 엄청 좋았기 때문이었습니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루디아의 마음을 연 자는 주님이십니다. 물론 루디아가 자기 마음을 열었지만, 그 뒤에는 성령의 사역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셨다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루디아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을 여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즉석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믿음을 예수님이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그의 믿음이 굉장하다고 칭찬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그의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7).

 

☞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 집에서 복음을 전한 일을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사실대로 보고했습니다. 당시의 할례자들은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 믿음처럼 회개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교훈하면서 거역하는 자를 온유하게 훈계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 반대하는 사람들을 회개시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딤후 2:25, 표준새번역).

 

 ☞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박해가 심해지자 흩어진 유대인 크리스천들 중에서 일부가 안디옥에 가서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들은 자들의 믿음이 좋아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교의 결실 뒤에는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길이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21).

 

 

맺는말

 

회개하고 믿는 것은 내가 행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의해서 일어나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성령으로 움직이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셨다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도 자기 믿음 덕분에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을 주셔서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고 주 예수의 복음으로 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한다면 내 믿음이 약해질 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주 예수를 항상 의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강해, 이중수 지음.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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