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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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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도 다급할 때에는 바울이 아덴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행 17:23) 라고 새긴 제단을 보았듯이 모르는 신을 향해 소원을 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성경의 계시로 알려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합니다.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서적에도 기도에 대한 책들이 많고 교회에도 여러 형태의 기도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어떻게 보면 다 알면서도 모른다고 할 수 있고, 다 하면서도 잘 안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행은 되지만 제대로 안 되는 것이 기도라고 한다면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기도에 관심을 가진 신자들이 많은 반면에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여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 자체에서도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서 많이 가르치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위선자들의 기도에 대한 지적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많이 하는 바리새인들의 기도 생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눅 18:9-14). 기도를 좋아하거나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영성의 표현은 아닙니다.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온전한 기도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은 물건을 살 때에 불량품을 원치 않습니다. 함량이 미달됐거나 하자가 있는 물품들은 원래 시중에 유통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올리는 기도도 불량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꺼이 들어주실 수 없는 불량품 기도들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무익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하나님께 최선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라야 합니다.

 

  침묵의 경배

 

  경배는 기도의 첫 단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누구를 만나면 인사부터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기 문제부터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을 만큼 크고 중요하신 분이라면 사람이 받는 인사보다 더 나은 인사를 받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기도하든지 하나님께 인사하는 것부터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어느 날 하나님의 보좌를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 6:1-4).

 

  우리들이 기도를 하려고 할 때에는 만유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거룩하신 여호와께 인사를 드린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로 물든 우리들이 높은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가는 일은 심히 경이로운 특권이며 엄숙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나가는 일은 만약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써 의롭다는 선언을 받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높은 보좌에서 만유를 다스리시는 존귀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자신들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비전이 있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조심 없이 나가는 일을 삼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 문제로 입을 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존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 입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선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기도의 첫 단계입니다. 기도를 하려고 입을 열기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상기하십시오(딤전 6:15-16; 사 6:3-5; 창 1:1). 그러면 주 앞에서 자기 입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합 2:20).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겸비와 경외의 침묵만이 가장 적절한 행위입니다. 아무도 자신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높이보다 더 높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갖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외심의 깊이가 그분의 존전으로 나아가는 나의 자세를 결정합니다. 당신은 어떤 자태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들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있음을 의식하면 우리들의 기도 자세와 내용이 정돈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기 전에 나 자신이 어떤 분 앞에 나와 있는지를 의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충동적인 기도나 무분별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산만하고 무질서한 기도를 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정신이 들겠습니까? 우리가 지존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 경외심이 없이 함부로 하나님을 접근하거나 무성의하고 유치한 기도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것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나 진노에 대한 공포심을 가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그분에게 우리들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두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군 천사들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므로 마땅히 깊은 경외심을 품고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자세로 나오는 자녀들을 기쁘게 맞이하시고 그들의 경배를 받아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환상에 나타났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존체를 떠올리며 주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의 영혼이 깊은 침묵의 경건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먼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기도의 응답에 마음을 쓰기 전에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을 먼저 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의 출발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머물면서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높은 보좌 앞에서 심령에 가득한 경외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때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신령한 순간입니다. 나의 온갖 필요를 말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가다듬고 영광의 하나님을 의식하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침묵의 경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할 때에 우리들의 영은 주님의 음성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내가 만약 잠시라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할 수 없다면 나 자신의 일에 사로잡혀 마음이 급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주님께 호소하고 도움을 청하며 알려드릴 일이 황급하여도 내가 열심히 간구한 많은 말들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다면 아무런 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면, 내가 드리고 싶었던 여러 가지 사연들과 요청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못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주를 즐거워했다는 사실로 기뻐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편을 원하십니까? 내 말만 잔뜩 풀어놓고 하나님의 임재나 음성은 없는 쪽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신 임재를 의식하는 것으로 침묵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주 여호와의 높은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임재의 순간을 침묵의 경배로 채우도록 하십시오.

 

[양들의 식탁 05년 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