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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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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됩니다. 율법 준수나 나의 선행은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의로운 자로 세우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로 믿어야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예수님을 나의 대속주로 내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의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믿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면 나의 믿음을 강조하는 셈이 됩니다. 우리는 믿음이 좋다 나쁘다, 믿음이 적다 크다 등으로 표현합니다. 혹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집회나 설교 때에 믿음을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한마디 해놓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세요!’라고 합니다. 남들이 다 아멘 하니까 나도 따라서 ‘아멘’하게 됩니다. 그냥 ‘믿습니다’라고 조용히 말하면 밋밋하니까 ‘믿습니다’ 하고 힘을 주거나 ‘믿십니다’ 하고 이상한 악센트를 넣어서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거나 믿음이 좋은 듯한 인상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되어서 그런 식으로 믿음을 억지로 표현하거나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예배를 본 것 같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런 것은 모두 유치하고 인위적인 조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엉터리 연극입니다. 그런 조작극의 분위기에 말려들어서 신앙생활을 하시지 않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나의 믿음은 올라가고 내려갑니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믿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그의 믿음에는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상황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그의 믿음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셨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사시거나 악과 타협하거나 순종하시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헬라어의 믿음(pistis)이라는 단어는 신뢰라는 뜻도 있지만 신실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습니다.

“yet we know that no one is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fulness of Jesus Christ. And we have come to believe in Christ Jesus, so that we may be justified by the faithfulness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because by the works of the law no one will be justified.”(New English Translation).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New English Translation(NET)이라는 최근의 영역 성경을 제가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By faith in Christ 대신에 by the faithfulness of Jesus Christ로 번역한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또By faith in Christ 대신에  by the faith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라고 번역한 영역도 있습니다.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21st century King James Version).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알기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 함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다.”(21st  Century King James Version).

 이 번역은 21세기 킹제임스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옮겼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이 두 형태의 번역을 놓고 갑론을박을 합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기보다는 양편 다 가능한  번역입니다. 넓게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신분과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모든 것을 믿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믿음과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옮기면, 우리의 믿음보다 예수님의 믿음을 구원의 근거로 보기 때문에 강조점이 나의 믿음에서 예수님의 믿음으로 바뀝니다.

직역성경은 메시아의 신실함에 강세점을 둔 번역입니다.

사람은 토라의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을 통하여 의로워지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마쉬아흐 예슈아를 믿는 것은 토라의 행위가 아니고 마쉬아흐의 신실함으로 의로워지기 위함입니다. 이는 토라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로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직역성경 갈 2:16)

그리스도의 믿음 혹은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우리가 믿는다고 보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격려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고 충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완전한 대속주가 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영어로는 믿음(faith)과 신실(faithfulness)의 어원이 같아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Faith라는 단어에 가득하다는 의미의 fulness를 붙이면 신실함이 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믿음으로 죄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신실하게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들의 죄가 속죄되도록 자신의 완전한 삶을 우리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그는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풀어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믿고 믿음이 충만한 신실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완전한 믿음의 삶을 신뢰하는 자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나의 믿음이 좋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이 좋고 완전하기 때문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나의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신뢰하면 내 믿음이 약할 때도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의 믿음이 나를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내 믿음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믿음으로 서 있습니다. 나는 나의 믿음 생활이 완벽하고 충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믿음은 항상 부족합니다. 나의 믿음 생활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완전무결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를 위해 아버지 앞에서 중보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과 신실하심으로 의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예수님의 완전한 믿음과 신실하심에 의존해서 삽니다.      

[갈라디아서 강해 이중수지음. 출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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