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항상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뜻, 선택, 예정, 은혜, 세례, 성화, 삼위일체, 종말, 등등입니다. ‘믿음’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용어들에는 신학적 의미가 가미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용법과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한 절의 말씀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시간 복음의 의미를 설명하시고 날마다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를 비롯하여 나머지 신약 성경 전체에서 복음과 관련된 ‘믿음’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제한된 지면에서 전체적으로 다룰 수 없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설명이라도 시도해 보겠습니다.
믿음의 정의
큰 주제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부분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학자들이 동의하는 정의를 간단한 말로 소개할 수는 있습니다. 즉, 믿음은 증거와 설득에 의해서 어떤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끝부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자기 처소로 초대해서 복음을 전했는데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행 28:23).
개역개정판의 ‘권하더라’고 한 것은 의미가 좀 약합니다. 원문의 ‘페이소’라는 단어는 ‘설득하다’, ‘확신시키다’(persuade, convince)라는 뜻입니다. 개역개정판에서처럼 ‘권한다’(appeal)라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번역에서처럼 ‘설득한다’는 의미가 더 낫습니다.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면서”(행 28:23, 표준새번역)
“예슈아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하였다”(행 28:23, 직역성경)
“예수님에 관해 그들을 설득시키려고 하였다”(행 28:23, 현대인의 성경).
성경의 믿음은 일반적인 믿음과 어떻게 다를까요?
첫째, 세상의 설득과 증거는 진리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증거와 기만적인 설득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흔히 믿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사기였다거나, 믿던 친구였는데 배신을 당했다거나 혹은 진짜 뉴스라고 믿었는데 가짜 뉴스였다고 말합니다. 믿던 도끼에 발 찍힌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진리가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제시하는 증거와 설득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하고 변치 않습니다. 속지 않으려면 믿음의 대상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상대적인 의미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럴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사회는 시공간의 제한과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영구적인 신뢰는 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영원하신 진리이시므로 영원히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의 대상은 절대적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것은 일개 인간이 한 선포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달성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구속주이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는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복음 메시지는 오류나 거짓이 없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완전하고 변치 않는 하늘 아버지를 완전무결하게 대변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자신의 신분과 복음에 대한 증거는 확고한 진리이며 불변의 약속입니다.
둘째,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입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것이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요 4:42).
♣ 구원하는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분과 그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취하신 것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대속하고, 죄인이었던 나를 의로운 자로 선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사건임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유일한 대행자로서 세상에 오신 것과 내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나를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의인으로 서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롬 4:25; 고전 15:1-8).
♣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요 3:16, 18, 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영생을 얻었다’는 말은 표준새번역에서처럼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라고 옮겨야 정확합니다. 원문의 동사가 현재시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생은 주 예수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순간에 받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즉각적인 효과를 냅니다. 믿음의 결과는 즉각적인 영생입니다. 믿는 순간에 영생을 받아 누립니다(요 5:24). 믿는 순간에 구원받고 사후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재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딛 1:2)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하셨던 말씀을 상기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새 창조의 생명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후에도 내가 받은 새 생명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죽어보기 전에는 육체의 부활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므로 보이지 않는 장래의 일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히 11:1, 표준새번역)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원하는 믿음’의 특징은 전적으로 무상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우리의 선행이나 공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엡 2:8-9). 보통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과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입니다(요 8:46; 히 4:15; 롬 10:9-10; 고후 5:21).
믿음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믿음에는 객관적인 대상이 있고 내용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나 강사들이 회중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인위적인 분위기를 이용하여 억지로 믿음을 고백하게 하는 일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믿음은 성경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 ‘믿습니다!’라고 소리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도 아니고 어둠 속에서 뛰어내리는 모험도 아닙니다. 그저 안전할 것으로 생각하고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과 다릅니다. 성경의 믿음은 하나님의 불변의 말씀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삼하7:28).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자의적으로 믿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의 증거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속 행위와
▶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과 삶과 죽음과 부활과 많은 가르침을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해서 성경이 주장하고 약속하는 모든 것이 믿음의 내용입니다(고후 4:5; 5:21; 요 1:1-4, 10-14; 3:16-18). 대표적인 실례로써 사마리아 여인과 마르다의 스토리를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요 4:25-26).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주신다는 영생의 샘물의 약속을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요 4:29; 비교 요 4: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요 11:27) 부활과 생명의 주로서 영생을 약속하신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의 내용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요 4:21). 다시 요약해서 보면 구원하는 믿음의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입니다. 그는 세상의 구주가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의 흠 없는 삶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순종을 하셨습니다.
◐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새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마가복음 1장 15절의 핵심 용어인 하나님의 나라, 회개, 복음,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실 때 먼저 “때가 찼다”(막 1:1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어느 때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예고하고 준비했던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진입이 예수님에 의해서 성취되는 때를 가리켰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는 결정적인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참 백성이 되기 위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것은 전적 투신입니다. 적당히 믿는 것도 아니고 믿었다가 말았다가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지붕에서 달아 내린 중풍 병자와, 혈루증 여자와 맹인 바디매오의 경우에서 보듯이, 믿음의 행위를 칭찬하셨습니다(막 2:5; 5:34; 10:52).
☞ 회당장 야이로가 딸의 죽음을 두려워하자 예수님은 “믿기만 하라”(막 5:36)고 독려하셨습니다.
☞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놀라워하자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고 하시면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비교. 막 9:23)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풍랑으로 곧 침몰할 듯한 배로 인해 무서워하자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라고 꾸짖으셨습니다.
☞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시자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막 6:6).
☞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무리를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막 9:19)라고 한탄하셨습니다.
맺는말
예수님이 의미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와 투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부여하십니다. 이 놀라운 구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믿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명백한 증거 앞에 설득이 되어 복음을 믿든지 아니면 복음을 배척하고 내 갈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택하십시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 14:6).
여러분은 아마 대부분 이미 주 예수의 복음을 믿고 신자 생활을 하실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복음을 확실하게 믿고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강해, 이중수 지음,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