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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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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1:1)   

▶‘말씀’(the Word)은 헬라어로 로고스(Logos)이다. 로고스는 비인격적인 이성이라는 뜻이다. 헬라 철학은 로고스가 우주를 통제하는 원리라고 보았다. 로고스는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말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구약의 배경에 더 의존된 개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새번역 참조. 개역개정은 “이르시되” 창 1:3, 6, 9, 11, 14, 20, 22, 24, 26, 28, 29).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를 일으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인격과 능력의 표출이다(시 33:6, 9; 107:20; 사 55:10-11).

▣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14).

 

[요한이 ‘태초’와 ‘창조’의 주제로 본 복음서를 시작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 본 복음서가 단순히 유대 나라에서 출생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온 세상의 출발부터 지금까지의 세상에 대한 전체적인 스토리라는 것이다. 성경은 온 우주의 출발부터 다룬다. 우리들의 존재의 시작부터 알린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말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와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 성경의 하나님만이 나와 이 세상의 근원과 실체에 대해서 가장 만족하게 알려 준다. 이것이 세상의 여러 타종교와 다른 점이다.

 

▶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을 방치하신 것이 아니고 깊이 사랑하셔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서 활동하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세상은 창조주의 실패작으로 내팽개쳐진 것이 아니고 거창한 첫 창조에 이어 더욱 거대한 새 창조의 액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생명과 빛이 세상에 나타났다. 혼돈한 세상에 새 창조의 질서가 일어나게 되었다.

 

▶ 새 창조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행된다. 창세기 1장의 절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 창조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의 꽃이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의 절정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난 또 다른 인간인 제2의 아담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참 형상인 제2의 아담으로 오셔서 첫째 아담의 타락한 후손을 죄와 어둠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 하나님의 새 창조는 어둠의 반대와 죄악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선한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되고 완성될 것이다.

[교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다. 

우리는  새 창조의 대 구원의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첫 창조와 새 창조의 비교]

요 1:1절은 창세기 1:1절을 연상시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의 서두는 창세기 서두의 창조 주제와 연결된다.

 

창세기 1장: 혼돈한 어둠이 있고 그다음 빛이 나타나서 어둠을 조명한다.

창세기 2장: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한다.

요한복음의 서두에서 빛이 어둠을 비춘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전체 아이디어는 말씀의 새로운 호흡에 의해 새 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이다(참고. 고후 5:17).

▣ 창세기의 서언은 창조 이벤트에 대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서언은 새 창조에 대한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생명은 죄와 타락으로 오염되었고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는 생명은 죽음과 어둠에 갇힌 죄인들의 운명을 영생의 삶으로 바꾸어 놓는다. 

 

[예수님은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

창세기 1장은 천지 창조로 시작된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은 천지 창조 이전으로 올라간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

요한복음 첫 절에서는 ‘창조’ 스토리가 아닌, ‘말씀’ 스토리가 나온다. 즉, 창조 이전에 ‘말씀’이 있었다.

☞ 태초에 말씀이 존재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존재 말씀이 곧 하나님. 

요한복음의 창조 스토리는 태초에 계신 말씀의 언급 다음에 나온다(3절). 말씀은 만물의 생명의  원천이다(참고. 고전 8:6; 빌 2:6; 골 1:16-17; 히 1:2). 이것은 최고의 기독론이다.

 

[질문]

1:1-2   말씀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는 무엇인가?

1:3      말씀이 창조계와 갖는 관계는 무엇인가?

1:5-6   말씀이 인간과 갖는 관계는 무엇인가?

 

[세례 요한의 사명과 나의 가치]

요 1:6-8, 15, 19-28

세례 요한은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고 그가 누구이신지를 증거하며 그를 바라보는 일로 보람과 즐거움을 누렸다. 그는 말씀에 대한 증언자로서 다른 사람이 그의 증언을 듣고 말씀을 믿게 하려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질문]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에게도 세례 요한의 소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가리켜야 할 화살표라면  목사나 교회나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

◐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말씀’ 의 위대함으로 눈을 돌리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겸비하게 된다. 말씀을 바라볼수록 자신의 중요성은 줄어든다. 자기에게 시선 끌기를 그치고 주 예수를 바라보면 ‘말씀’의 영광에 압도된다.

◐ 그처럼 크신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소명과 특권을 받게 된 자신을 생각해 보라.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몰두하라. 그러면 자신을 잊고 그분께 심취하게 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제자도에 대한 좋은 본보기이다.

 

[영접과 배척, reception & rejection]

◐ ‘말씀’을 영접하는 자와 영접하지 않는 자가 있다(1:11-12). 이 두 반응은 본 서신 전체에 나온다(7:40-44; 8:30, 59; 10:19-21; 11:45-46).

◐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형식과 전통과 외형에 붙잡혔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신뢰의 관계보다 종교 자체를 신뢰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 자체로서 목적이었다.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종교 생활이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면 생명의 끈이 끊어진 것이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올 수 없다.  

◐ 세상이 창조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1:10). 최대의 역설이다. 인간은 창조주를 싫어한다. 세상 창조를 의식적으로 부인한다(롬 1:20).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 적대적이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까지도 그들에게 약속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인간의 영적 어둠은 너무도 크다. 절대다수는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

참고. ‘세상’은 중립적인 의미로 창조계를 의미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인간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이름을 믿는 것은 무엇인가?]

1:12. 영접=그 이름을 믿는 것. ‘이름’은 그 사람의 전체를 대변한다. 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그의 이름을 믿는 것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구원자’이듯이 그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분의 성품과 능력과 신분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생명으로 믿고 그를 구원자로 신뢰하는 것이다.

☞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 세례 요한, 사도들, 예수님 자신의 증언)

☞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말씀’이시다. 성자 하나님이시며 창조주며 세상의 통치자며 구주이시다.

(참고. 히브리서 1-5장에서 지적된 예수님의 신분)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 예수님은 만유의 상속자이시다.

   ◐ 예수님은 창조의 대행자이시며 보존자이시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

   ◐ 예수님은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

   ◐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셨다.

   ◐ 예수님은 천사보다 높으신 분이시다.

   ◐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이시다. 

   ◐ 예수님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이시다.

   ◐ 예수님은 신실한 대제사장이시다.

   ◐ 예수님은 모세보다 높으신 분이시다.

 

[영접하는 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받는다(요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두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예수를 영접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새 생명과 성령의 내주를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간다. 즉, 예수를 믿는 즉시 구원을 받고 어둠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빛의 나라로 옮겨진다(골 1:13).

♥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이 시작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징을 갖게 된다.

어떤 면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시다(행 17:28-29).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 그의 참 자녀는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그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통해서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하다. 이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1:13)이라고 부른다.

 

[질문]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그분의 신분을 믿는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속주 하나님으로 영접하였는가?

나는 날마다 삶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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