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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수넴이라는 동네에 살던 한 여자가 엘리사 선지자를 자기 집에서 모시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수넴 여자는 ‘귀한 여인’이라고 했는데 재력이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에는 매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어떤 개인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한 번 이상 일어난 경우는 드뭅니다. 이 여자에게는 기적이 두 번씩 일어났습니다.

 

수넴 여자에 대한 에피소드는 3부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엘리사 선지자를 대접하고 아들의 약속을 받은 것(왕하 4:8-17)

 

2) 수넴 여자의 아들이 갑자기 죽고 엘리사가 다시 살리는 것(왕하 4:18-37)

 

3) 수넴 여자가 기근으로 7년간 블레셋으로 이주했다가 귀국하는 스토리(왕하 8:1-6).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자세하게 기록된 것은 그만큼 중요한 교훈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훈의 하나로서 수넴 여자의 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하루가 갖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과 관계가 없는데도 일어나는 일을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우연히 알게 되는 사실이 있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예들이 적지 않습니다. 적군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긴 것이 공교롭게도 아합 왕의 갑옷 솔기 사이를 관통하여 죽게 하였습니다(왕상 22:34). 룻은 이삭을 줍다가 우연히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가게 되어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됩니다(룻 2:3). 에스더서는 우연으로 짜인 스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등장인물로 나오는 모르드개, 하만, 에스더 및 기타 유대인들의 운명이 우연한 사건들 때문에 역전과 반전을 거듭합니다.

 

세상에서 우연은 일어납니다. 사실상 수넴 여자가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궁에서 게하시를 만난 것도 우연한 일이었습니다(왕하 8:4-5). 그런데 우리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수넴 여자에 대한 오늘의 본문에서 한 가지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라는 표현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11절에서도 ‘하루’가 나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이것은 문장적인 스타일이기보다는 본 사건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하루’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하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하루’는 보통 날이 아니고 특정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어느 ‘하루’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이라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수넴 여자는 그에게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이 하루는 그녀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날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마을을 어느 날 지나게 되었고 수넴 여자는 그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서로 만나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가 언제 자기 마을을 지나게 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하루는’ 우연한 만남이었을지 몰라도, 앞으로 전개되는 두 사람 사이의 스토리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배경에 깔린 특별한 ‘여호와의 날’이었습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의 필요를 공급하였습니다.

 

수넴 여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사가 자기 마을에 도착한 것을 보고 그냥 선지자가 지나가는구나 하는 정도로 무관심하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자기 집이 넉넉하므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어서 기회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특별한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행해야 합니다.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는 때만 기다릴 것이 아니고 작은 기회들이 왔을 때 이를 알아보고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엘리사들은 때때로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깨어서 눈을 뜨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무슨 섬김의 기회를 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엘리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넴 여자는 그런 자세로 살았기 때문에 엘리사가 왔을 때 주님을 섬길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수넴 여자는 당시 이스라엘의 최대 선지자였던 엘리사를 자기 집에 모시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즉흥적인 기분으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 선지자를 보니까 어쩐지 식사 대접을 한 번 해 드리고 싶어서 즉석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가 수넴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음식을 올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엘리사의 사역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 일에 자신도 동참하여 작은 도움이나마 주기를 원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정말 관심이 있는 것 하고, 그냥 사람 얼굴 보고  기분에 따라 음식 한 번 대접하고 끝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흥적인 대접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되 작정을 하고 꾸준히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의무의 한계를 넘어가는 자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한두 번 동정심에서 혹은 일시적인 기분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의무나 체면의 한계를 넘어가는 희생과 사랑을 꾸준히 보이는 자들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갚아 주십니다.

 

흔히 수넴 여자가 엘리사 선지자를 대접한 것을 놓고 목사 대접 잘해야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갖다 붙입니다. 당시의 선지자들은 대부분 자선의 대상이었습니다. 고정 수입이 없었고 백성이 자원해서 주는 것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사역자가 사례비를 받습니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조건 목사이기 때문에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야 하는 자들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본 이야기를 유독 목사에게 제한해서 의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유치한 간증들이 돌아다닙니다.

 

「어떤 여 집사님이 사업이 망했는데 양복 한 벌 사 줄 돈만 남았었데요. 그래서 그 돈으로 눈 딱 감고 목사님 양복을 사드렸더니 금방 일이 잘 풀리더래요.」 하는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럼 목사 대접 못 하는 분들은 복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서는 이런 간증이나 가르침이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많이 개척하고 숱한 고생을 했지만 그런 속 드려다 보이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또 신자가 그런 가르침에 귀가 솔깃해서 이기적인 동기로 목사를 대접하는 것이라면 피차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됩니다.

 

엘리사는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수넴 여자의 제안을 자신의 권리인 양 당연하게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넴 여자는 간절히 여러 번 권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에게 꾸준히 음식을 대접하였고 나중에는 방까지 별도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순수한 열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를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이기적인 동기를 내던지고 최선의 성의를 끝까지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선행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엠마오의 두 제자와 떨어져서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눅 24:27). 그래서 두 제자는 예수님을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눅 24:29)라고 적극적으로 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를 섬기는 일에서 적극적이고 진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진지함을 달아 보기 위해서 종종 ‘더 가려’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미온적이거나 진지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를 떼어 놓고 홀로 더 가실지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이 주시려는 놀라운 축복들을 놓치고 맙니다.

 

진지함은 섬김의 필수 요소입니다. 입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중에는 주의 일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하고서 헤어지면 연락 한 번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저 헌금 한 번 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체면상 한두 번 주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흐지부지해 버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일에 관심이 많은 듯이 말하고서 용두사미가 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수넴 여자의 후원은 진지하였습니다. 단순한 충동적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세상적인 유익을 바라고 엘리사 선지자를 후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니까 축복 기도를 받거나 무엇을 물어보려는 의도에서 그에게 식사를 먼저 대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목회자 대접하면 복 받는다 더라’고 하니까 정말 그런지 시험해 보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에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대접받기를 사양하는 엘리사 선지자를 강권하여 결국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엘리사와 교제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꾸준히 섬겼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말 ‘귀한’(4:8) 성도들입니다. 돈이 있으면 선한 목적으로 쓸 줄을 알아야 하고, 좋은 관심이 있으면 실제적인 방법으로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에게 복을 내리시려고 기다리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그런 성도들은 주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기분 따라 대하십니까? 아닙니다. 신실하게 대하십니다. 그래서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들의 형편에 따라 좋아하셨다가 싫어하셨다가 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꾸준한 사랑으로 자신의 의무의 한계를 넘어가는 자들에게 후히 갚아 주십니다. 한두 번 동정심에서 혹은 즉흥적인 기분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의무나 체면의 한계를 넘어가는 희생과 사랑을 꾸준히 보이는 진지하고 순수한 자들을 주께서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도 바울의 축도를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 (코리아 위클리 1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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