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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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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1과)  요 3:14-16

     [보충 노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성령의 씻기는 정화력에 의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에스겔 36:25-26의 약속을 소급해서 언급한 것이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주어졌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에 오염된 자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약속의 땅도 더럽혀졌고 여호와의 이름도 이방 나라에서 더럽혀졌다(겔 36:17-20).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맑은 물로 씻기고 새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주어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물은 직접적으로 세례를 가리키지 않는다.

선지자들은 죄를 씻는 것을 물로 씻는 정결 의식의 용어로 흔히 표현하였다(참조. 슥 13:1). 그리고 성령의 수여는 새 시대의 도래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었다(겔 39:29; 사 44:3; 59:21; 욜 2:28, 29; 행 2:16 이하). 물과 성령에 대한 이러한 언급들은 메시아 시대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것이었다. 메시아 시대에는 죄로부터 씻기는 정화의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씻는다는 표현은 몸에 묻은 더러운 것을 제거하듯이 죄를 거두어낸다는 그림 언어이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들의 죄를 씻는다고 할 때에도 동일한 방식의 그림 언어이다. 예수님의 피 자체가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우리들의 죄를 처리하였기 때문에 죄가 용서된다는 의미이다. 니고데모는 이러한 말씀들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어야 할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지만 자신은 아직 거듭남의 체험도 없었다. 그가 또 몰랐던 것은 성령의 수여와 신생이 주어지는 새 시대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니고데모는 세례 요한이 증언한 대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요 1:33)라는 사실을 몰랐다. 성령 세례는 안에서 솟아나는 새 생명의 세례로서 예수님이 제공하신다고 하였다.

▣ 그러니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선지자들이 예고한 이 새로운 능력과 정화의 날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었다. 즉, 예수님이 메시아며 하나님의 나라를 출범시키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대인의 민족적인 특권, 할례, 율법 준수, 경건 등이 아무 소용이 없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는 것이다(1:12-14). 그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신 분임을 믿는 것이다요 (요 3:16).

한편, ‘물과 성령’이라고 할 때의 ‘물’은 이차적인 의미에서 세례와 연관해서 이해될 수도 있다. 물 세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맞이하는 준비를 위해 회개한다는 의미에서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례를 주었다(요 3:22; 4:1-2; 행 9:18; 10:48). 세례 의식은 옛 삶이 수장되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과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 세례를 받고 안 받고 하는데 달린 문제가 아니다. 물 세례를 받고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많다. 그런가 하면 세례를 받기 이전에 거듭난 자들도 적지 않다. 십자가 강도는 대표적인 실례이다(눅 22:42-43). 물세례는 100% 구원에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 세례는 받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령 세례가 너무도 중요해서 물세례는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혹은 물 세례만 받았으면 새로운 영적 생활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보지 않았다(고전 10:1-11). 이 둘은 밀착 관계에 있다.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세례를 받고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 정상이다. 물 세례에 대한 지시는 마태복음 28:18-20에서 선교와 관련해서 제자들에게 준 예수님의 명령이었다.   

[니고데모의 무지와 예수님의 신령한 지식]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왜 신생이 필요한지를 말씀하실 때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하셨다(요 3:6).

육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없는 약하고 타락된 인간 본성을 가리킨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육’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 니고데모는 육으로 태어난 자였다. 그래서 그는 위로부터 즉, ‘영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바람이 불면 소리와 결과로 분명히 바람의 존재와 활동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도 신비하면서 분명한 것이다(요 3:8). 

그러나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니고데모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구약학 박사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교리와 지식의 지반이 무너지는 말씀을 들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누구도 회개할 수 없고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니고데모는 종교 전문가였고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구원의 기본적인 요소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였다(요 3:10).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급의 종교 교사가 이런 수준이었다면 일반 백성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오늘날의 신학자, 목사, 성경 교사들 중에서도 니고데모와 같이 중생의 체험이 없고 기본적인 복음의 가르침에 무지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니고데모는 ‘우리가…아나이다’(요 3:2)라고 하였다. 니고데모가 소속된 바리새인 학파는 성경에 능통한 학자들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종교 교육을 시키는 지도자들이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성경의 핵심적인 지식에는 무지하였다. 참 지식은 예수님에게 있다(요 3:11).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무엇인가? 니고데모의 근원은 땅이고 예수님의 근원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4).

 니고데모는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3)이라고 선언하셨다.

   유대교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은 길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참 지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 지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가 주는 것이었다. 인자인 예수님은 천상에 속한 하늘의 영역과 지상에 속한 인간의 영역을 연결하는 신령한 사닥다리였다(요 1:51).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려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길을 제시하는 예수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질문 및 토의

요한복음 3:1-21은 복음의 핵심이다. 3:1-13에서는  선택, 거듭남, 육과 영, 하나님 나라, 성령의 사역, 인자의 근원 등이 나온다. 3:14-21에는 인자가 세상에 오신 목적, 하나님의 사랑, 멸망과 영생, 심판, 생명의 빛을 싫어하는 이유, 진리를 따르는 이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본 항목은 구원 교리에 대한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1. 다음 질문들은 서로 연관된 것들이다.

ㄱ. 요 3:13, 14에서 언급된 ‘인자’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ㄴ.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ㄷ. 광야의 놋뱀과 인자가 들리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연구: 신약에서 인자가 들리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관련된 구절들을 찾아 보시오.

예) 요 7:39; 12:32-34

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할 때의 ‘이처럼’의 내용은 무엇일까? (요 3:16)

앞 문맥을 살펴 보시오.  

1번 질문

ㄱ. 인자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3, 14절).

13절은 ‘인자’의 천상적 신분이다. ‘인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권위를 입고 메시아로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에 대한 명칭이다. 예수님의 포인트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천상적 기원을 가진 것이라는 말이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공급은 이렇게 ‘위에서’ 오는 것이었다.

14절의 인자는 고난의 종으로서의 인자를 가리킨다(참조. 이사야 53장). 인자의 십자가 고난은 구원의 길이었다.

ㄴ.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자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 들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첫째, 1세기 당시의 십자가 형은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들어서 세웠다(요 12:32-34).

둘째, ‘들린다’(lifted up)는 말은 높여지는 영광을 받는다는 뜻도 있다(요 7:39). 십자가의 죽음은 구원의 수단이며 예수님이 부활을 거쳐 원래 왔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은 속죄 사역을 이루시고 대속주로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셨다. 

ㄷ. 광야의 놋뱀과 인자와의 관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스토리는 ‘위에서’ 온 구원을 말한다. 모세는 뱀에 물린 자들의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서 장대에 놋뱀을 달았다. 뱀에게 물린 자들은 이 놋뱀을 바라보면 살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점이 있다.

요점 1. 백성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은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이었다. 구원의 공급자는 하나님 자신이다.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라고 지시하시고 이를 쳐다보는 자는 살 것이라고 약속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민 21:8).

요점 2.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공급하시는 방법에 대한 진술이다. 인자가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들려 대속의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광야의 구원은 놋뱀의 수단으로 된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본보기였다. 놋뱀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장대에 달아 올려졌듯이, 인자도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의]

놋뱀에 대한 예시를 잘못 대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백성을 물어 죽였던 놋뱀이라는 뜻은 아니다. 십자가의 대속이 구원의 방법이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라는 의미이다.

2번 질문.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의 내용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본 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복음 메시지의 핵심이 담겨 있다.

본 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처럼’ 사랑했다는 말이다. ‘이처럼’은 위의 문맥을 가리킨다.

  For this is the way (or in this way) God loved the world. (NET). 이와 같이 혹은 이런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냥 외아들을 주실 만큼 사랑했다는 식으로 번역이 되면 위의 문맥이 상관 없다. 우리말 번역은 ‘이처럼’이라고 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일부 영역에서럼 so much의 의미로 대개 이해한다(For God so loved the world….KJV).

본 절의 강조점은 외아들을 ‘어떤 식으로’ 주셨는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포인트는 ‘이처럼’(in this way)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것과 곧 말하게 될 것을 연결시킨다. 그러니까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은 이미 광야에서 발생했던 과거의 한 사건과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앞의 3장 14절로 돌아가게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in the same way)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14절)가 곧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의 내용이다.

포인트: 3:16의 시작하는 말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For this is the way God loved the world…)는 3:14, 15절에서 언급된 놋뱀과 인자를 믿는 자가 받는 영생의 약속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특히 15절의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표현이 16절에서도 반복되었음을 주목하라. 광야에서 독뱀으로부터 받은 구원이 독생자를 믿음으로써 받는 구원과 동일 선상에서 이중으로 반복되었다.

 [묵상]

1)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셨는가?

 광야 백성이 왜 벰에 물렸는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을 여셨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는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악한 인간들을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죄에게 물려 죽어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 목적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들려 죽게 하심으로써  멸망이 아닌 영생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내용의 일부이다.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자마다 심판으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심판 이전에 죄의 용서와 영생을 오퍼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의 증거이다.

3) 하나님이 세상을 언제 사랑하셨는가? 앞으로 사랑하시겠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하였다. 그 까닭은 독생자 예수를 이미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게 하셨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고 실제로 사랑의 증거를 보이셨다.

▣ 그런데 그의 독생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대변한다. 그는 창조의 대행자였다. 하나님과 태초부터 동등하셨다. 그는 하나님과 동일한 생명의 근원이었다(요 1:1-4; 5:26).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요 1:14)하였다.  이것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신 것의 내용들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이 독생자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받는다. 이것이 본 절의 골자이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같이 큰 구원’(히 2:3)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희생의 관점에서도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들려 모든 죄의 형벌을 받게 하셨다(요 3:14; 롬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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