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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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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교인들은 교회 생활이 익숙해지면 큰 잘못이 없는 한, 예수님을 잘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열심히 주를 섬긴다고 하여도 그것은 나의 잘못된 동기에서 나온 종교 활동일 수 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대해 노골적인 평가를 한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는데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신 표적을 보았음이러라”(6:1)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무리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6:26)라고 지적하셨다.

 

  1. 일용할 양식을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나쁜 일일까?

    그 자체로서 나쁘지 않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그를 모세가 예고했던 “그 선지자”(6:14; 신 18:15, 18)라고 믿고 따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사실상 날마다 일용할 양식에 해당하는 것들을 놓고 기도한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신다고 믿는다.

 

  1.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는 나의 현실적 필요를 넘어 궁극적인 목표에 닿아야 한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그분이 나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분이라고 믿고 따르는 일은 일차적인 목적에서 그치면 안 된다. 예수님은 무리의 배고픈 현실을 동정하셨다(막 8:1-3). 그런데 육신의 양식과 병고침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가시적인 방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면서도 항상 하나님 나라를 전하셨다(막 6:34; 눅 9:11).

 

질문: 왜 예수님은 우리의 당면 문제보다 궁극적인 목표에 초점을 잡으셨는가? 예수님이 제시하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찾아보라(참조. 요 6:27, 29, 35, 47-58).

질문: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6:15) 왜 잘못된 일인가?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마 2:2)가 아닌가?

 

세상에 오실 선지자”(6:14).

신명기 18장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예고됐었다. 무리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보고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에 대한 그릇된 기대와 오해를 반영한다.

   첫째, 무리는 예수님이 구약의 여러 모형들이 바라본 원형이었음을 간과하였다. 모형은 원형의 모습에 대한 그림자이다. 모형은 원형이 올 때까지의 길잡이며 화살표다. 무리는 모세가 예언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가 모세의 모형을 성취하는 분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모세와 같은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영도자로서 로마로부터의 해방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메시아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욱 위대하신 분이다(히 3:1-6).

   

   둘째, 무리는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에 대한 신명기 본문의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였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신 18:18)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무엇이었는가? 선지자의 소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가르치는 일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리는 예수님의 영적 가르침보다 육신적 필요에 집착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질문: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로 일치시켰는가? (참조. 행 3:22-24; 7:37; 비교. 요 1:21).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종류의 선지자로 이해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구원 메시지보다 나에게 당장 필요한 육체적 필요가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 주된 동기가 아닌지 반성해 보라.

 

   예수님은 유령이신가?(6:16-21)

   배를 타고 가던 제자들에게 설상가상으로  큰 어려움이 겹쳐서 발생하였다. 이미 어두웠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대풍과 높은 파도가 일어 배가 곧 침몰 직전이었다. 사력을 다해 노를 저었는데 물 위로 유령이 걸어오고 있었다. 겁에 질린 제자들은 두려워서 소리 질렀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재앙을 당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겹치면 크게 당황한다.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하는데 왜 우리 인생의 배가 자주 뒤집히려고 하는 것일까?

 

   교훈:

   주님은 삶의 시련과 위기를 통해서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짚어보게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어려움은 믿음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셨다(요 6:6). 안드레도 예수님에게 오병이어로는 오천 명을 먹일 수 없다고 말하였다(요 6:8-9). 아무도 예수님을 위기 속에서 신뢰하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위력에 압도되면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은 조금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런 자들은 구원의 주님을 유령으로 착각한다.

 

   그럼 믿음의 시련을 견디고 주님의 시험을 통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분께 자신을 맡겨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분을 믿도록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공포에 질려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셨는가?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6:20, 새번역).

    ‘나다’(헬. ego eimi/I AM)라는 말은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그냥 자신을 가리키지만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 I AM WHO I AM)) 혹은 “나는 곧 나다”(새번역)라고 계시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 계시와 일치시켰다.

 

8:24 “내가 곧 나(I AM he)임을 너희가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8:28 “너희는 인자가 높이 들려 올려질 때에야 ‘내가 곧 나’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5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before Abraham was, I Am).

 

    예수님은 자신의 신성을 직접적으로 진술하셨고 은유적으로도 표현하셨다.

    • 나는(I AM) 생명의 떡이다(요6 :35, 48, 51)

    • 나는(I AM) 세상의 빛이다(요 8:12; 9:5)

    • 나는(I AM) 양의 문이다(요 10:7, 9)

    • 나는(I AM) 선한 목자이다(요 10:11, 14)

    • 나는(I AM)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

    • 나는(I AM)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 나는(I AM) 참 포도나무이다(요 15:1)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와서 배로 오르시는 예수께 절하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였다(마 14:33). 이것이 광풍의 시련이 주는 영적 수확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련 속에서 역사하신다. 시련의 거친 바다에서만 우리는 광풍을 제어하는 예수님의 실체를 목격하고 내 믿음의 미약함을 돌아보게 된다. 베드로는 파도 위를 걸었지만 광풍을 보고 의심하였다. 그는 어선의 침몰 이전에 자신의 침몰을 먼저 경험하였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라고 부르짖었다. 나는 I AM의 주님을 신뢰하는 동안만 안전하다. (참조.  시편 107:29; 55:8; 107:25; 29:10). 그때 우리는 쉽게 믿음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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