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본 웹 사이트의 ‘복음과 구원’ 항목의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신약에서 세 가지 측면으로 진술되었다.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와 성격이 같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범주로 대별할 수 있다.
1) 처음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initial salvation).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8).
예수님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다.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즉시 죄의 용서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에서 영생의 영역으로 옮겨진다(요 3:18; 5:24).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현재 영생을 가지고 있다”(요 6:47; 5:24 새번역)
질문: 영생은 누구에게서 받는가? (요4:14; 10:28)
질문: 영생을 못 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요 5:39-40; 행 13:46)
2) 점진적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매일의 체험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신약 성경은 크리스천 삶의 첫 단계의 영생에 대한 가르침보다 지속적이고 점증적으로 들어가는 날마다의 영생의 체험을 더 많이 강조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영생은 한 번 받은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늘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럼 실제적으로 어떻게 영생을 늘려가야 할까?]
예수님이 영생의 떡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요6:47-48).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날마다 먹었듯이, 우리도 예수님에게서 날마다 양식을 받아 먹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양식이 필요하다. 영적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은 무엇인가? (요 6:32-35)
• 하나님이 주시는 떡이다.
• 이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 이 뗙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 이 떡은 곧 예수님이다.
•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요 1:1).
예수님 자신이 영생의 근원이며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공급하신다. 이 양식으로 우리의 영혼이 생기를 얻고 생동하며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 이 생명의 양식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
예수님은 영생을 솟구치는 샘물에 비교하셨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그런데 아무리 샘물이 넘쳐도 내가 마시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 영생의 양식은 우리 편에서 받아 먹어야 한다. 영생을 얻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자양분을 받아 먹는 일이다. 말을 바꾸면 예수님의 말씀을 날마다 경청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영속적인 영생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요12:49-50).
3) 예수님의 재림 때에 들어가는 영생(마25:46)
마지막 단계의 영생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받는다. 그때 의로운 자들이 영생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오는 세대’의 마지막 단계에서 영생으로 들어간다(막10:30;눅18:30).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주님의 부활 생명이 재림 때에 모든 신자들에게 더욱 넘치게 주어질 것이다(요 6:39-40).
그런데 마지막 단계의 영생이 어떠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에 자세히 알 수 없다(요일 3:2). 적어도 예수님의 영생이 우리 속에서 흘러 넘칠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와 활력으로 충만할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신자들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힘쓴다(요일 3:3).